[오피니언] KAIST의 보석
고교 시절 프로그래밍에 몰두하여 저의 창조 욕구를 만족시켜 왔기 때문에 공부만 했던 친구들과는 조금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실업고에서도 중간 정도 성적으로 한국과학기술원(KAIST) 특별전형에 지원했던 지승욱 군의 자기소개서다. 그래도 그는 내 안에서 들끓고 있는 창조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곳은 KAIST뿐이라며 당당했다. KAIST는 그의 잠재 역량만 보고 합격시켰다. 숨겨진 보석을 찾으라는 서남표 총장의 특명이 실업고 이변을 만든 것이다.
하지만 이미 자율적으로 신입생을 뽑고 있는 미국 같으면 이변이랄 것도 없다. 2002년 뉴욕타임스는 1년간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고교 3년생 3명의 대입과정을 1면에 소개한 바 있다. 저소득층 흑인학생 루벤은 수능(SAT) 점수가 100점 만점에 61점밖에 안 됐지만 시스코시스템 컴퓨터코스 참여 경험과 리더십을 인정받아 버크넬대에 합격했다. 동부명문 아이비리그 대학의 입학처장이었던 레이철 콘은 최근 저서 대입에 성공하는 법에서 자신의 자질과 열정, 특성을 드러내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KAIST가 숨겨진 보석을 찾은 것은 이 대학이 교육인적자원부가 아닌 과학기술부의 감독을 받기 때문에 가능했다. 논술시험까지 시시콜콜 간섭하는 교육부 규제에서 자유로웠던 거다. 미국 대학이 세계적으로 앞서가는 비결도 자율에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지난달 프랑스 대학의 경쟁력 추락을 보도하며 대학발전의 세 가지 동력은 자율, 경쟁 그리고 학생선발이라고 했다.
KAIST가 찾아낸 보석을 어떻게 갈고닦아 빛을 낼지, 앞으로가 더 관심사다. 실업고 학생들을 포함한 전국의 잠재적 보석들이 일제히 희망으로 반짝이는 모습도 눈에 어른거린다. 어윤대 고려대 총장은 외국대학 총장들은 한국에선 사립대학들이 왜 (교육부의) 제재를 받느냐고 의아해한다고 했다. 죄 없이 고생하는 학생들과 한국의 미래를 위해 대학이 반기를 들 수는 없을까.
김 순 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