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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매듭의 역사
日期:2012-09-05 10:15  点击:197

 한국 민족은 먼 옛날부터 고유한 의식주의 유형문화를 통한 장식수단으로 독자적인 맺는 기법을 익혀 왔다. 오랜 역사를 거듭하면서 맺는 기법은 전통매듭으로 민속공예의 한 분야를 이루게 되었고, 궁중예식 ·실내장식 ·국악기 장식 ·노리개 ·유소 등 생활 전반에 걸쳐 장식 매듭으로 애용되었다. 매듭 하나하나에는 한국 여성의 슬기와 창조성, 정교한 예술성이 담겨 있고, 한국 민족의 격조 높았던 생활과 멋을 엿볼 수 있다.

완성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끈목을 만드는 작업에서부터 시작한다. 생사를 정련하여 말리고 염색하며 합사(合絲)하는 등 수십 단계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한결같이 마음을 가다듬고 정성스런 손길을 다해야 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끈목으로 국화무늬 ·매화무늬 ·당초무늬 ·완자무늬 등 한국의 옛날 무늬를 본떠 평면적인 무늬를 입체적으로 표현한 것이 전통매듭이다.
이러한 전통매듭은 조선시대에 가장 활발하게 그 기능을 발휘하였는데, 《대전회통(大典會通)》과 《대동여지비고(大東輿地備攷)》 등에 기록이 있다. 《대전회통》 공전(工典)에는 끈을 치는 장인(匠人)을 다회장(多繪匠)이라 기록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여러 궁(宮)과 각 사(司)에서 쓸 공예품 조달을 위해 일정한 수의 장인을 궁과 사에 예속시켰으며, 장인은 경공장(京工匠)과 외공장(外工匠)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경공장은 한성 내궁과 사에, 외공장은 각 지방 관아에 속해 있었고, 각 관아에 속한 장인들은 정해진 공역일(公役日)에 일을 했고, 그 밖에는 장세(匠稅)를 납부하고 자유롭게 자기 일에 종사할 수 있었다.
특히 다회장은 경공장에만 있었던 것 같은데, 본조(本曹)에 2명, 상의원(尙衣院)에 4명, 전설사(典設司)에 6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외에 생사에서 시작하여 합사 ·연사(練絲) ·염색 등의 공정을 세분하여 상의원에 합사장 10명, 연사장 75명을 따로 두었고, 염색에서도 홍염장(紅染匠) ·청염장(靑染匠)으로 기능을 구분하는 등 공정의 복잡성과 끈목의 수요가 얼마나 많았는지를 충분히 짐작하게 해준다.
기록에는 없으나 상궁들도 즐겨 끈목을 치고 매듭을 맺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대형 유소는 장인들에 의해 만들어졌고 소형 유소나 노리개 ·주머니끈 등은 그 당시의 수요에 따라 상궁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본다. 민가에서의 수요도 많아 약 50여 년 전만 해도 서울 시구문 일대는 실 ·끈 ·매듭의 본고장이었다고 한다. 그곳에서 만든 주머니끈 ·염낭끈 ·허리띠 ·노리개술 등을 둘러메고 다니면서 팔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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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8 2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