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厚明 喜爱星星的心情
그다음 과제는 그림 보고 느낌 말하기였다.
의사는 가방 속에서 다른 책자를 꺼내 이쪽저쪽 펼쳐보였다.
그것은 아무런 구체적 형상도 아닌 부정형의 형상으로서,
말하자면 제멋대로 된, 그림 아닌 그림이라고 하는 게 옳을 것이었다.
의사 역시 이건 정답은 없는 거라고 안심을 주기도 했던 것이다.
“박쥐……나비……골반……바다 속……사원…….”
나는 그야말로 느낌을 말하려고 애썼다. 정답이 없다고 했어도,
아니 정답이 없다고 했기 때문에, 그것은 더 어려운 문제였다.
정답이 있었다면 모른다고 해도 그만일 텐데 어쨌든 무엇인가 자신의 견해를 밝혀야 한다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일임을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그런데도 내가 하나하나 말할 때마다 의사는 무엇인가 차트에 꼬박꼬박 적어넣는 것이었다.
의사가 적어넣는 것을 보며 나는 그가 내 존재의 비밀을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으리라는 기분 나쁜 느낌에 사로잡히기까지 했다.
끔찍한 일이었다.
몇 개의 그림을 그리고 생각을 말하고 하는 동안 나는 마치 산 채로 회를 떠 살이 다 발라내지고
앙상한 뼈만 남은 생선 꼴이 되었다는 느낌이었다.
언젠가 거제도에 갔을 때 낚시꾼 사내가 갓 잡은 물고기를 회를 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살은 말끔히 발라내고 머리와 꼬리와 뼈만 남은 것을 사내는 바위 밑 바닷물에 휙 던져버렸다.
거기까지는 나는 그저 그러려니 하고 재미있게 보았었다.
그와 함께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그 뼈만 남은 물고기가 꼬리지느러미만을 부지런히 양옆으로 움직여 저쪽 물 가운데로 도망쳐 가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낚시꾼 사내도 어 저 놈 봐라 하면서,
허허허 어이없는 웃음을 내게로 날렸다.
나는 마지못해 따라 웃기는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기어코 내가 못 볼 것을 보았구나 하고 낙담하고 있는 모습을 그에게 보이기 싫어서 웃어준 웃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