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지 속에서 나의 낙원 찾았죠
우리가 세상에서 찾고 있는 낙원은 단 하나뿐인 걸까?
올해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인 권기태(40사진) 씨의 장편소설 파라다이스 가든(민음사)은 이 질문에 대한 탐색이다.
권 씨의 소설은 한번 펼치니 문장이 꼬리를 물면서 그만, 쉬지 않고 읽어 끝에 이르렀다(평론가 김화영)는 평을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작품은 이상향이란 무엇인가라는 묵직한 주제를 담았으면서도 대중적인 짜임새를 갖췄다.
도입부터 개를 쏴 죽이는 섬뜩한 장면이 나온다. 성림건설 사장 원직수의 계모가 기르는 애견이다. 원직수는 계모가 몰래 설치한 도청기를 죽은 개의 목에 매달아 주인에게 돌려보내라고 지시한다. 계모의 아들을 쫓아내고 튼실한 성림 낙원을 세우는 게 그의 꿈이다.
이 개를 데려다주는 임무를 맡은 이가 성림건설 사원 김범오. 집 옥상에 자신만의 낙원인 정원을 꾸며 놓고 기쁨과 위안을 얻는 평범한 사람이다. 어쩌다 귀찮은 일에 끼어든 것도 어이없는데, 설상가상 개를 옮기다가 집주인에게 들킨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김범오는 친구가 있는 수목원으로 피신한다.
김범오와 원직수의 충돌을 통해 작가는 이상향이 충돌하는 현장으로서의 한국 사회를 보여 주고자 했다. 저마다 다른 낙원을 꿈꾸고, 그래서 무수히 부딪치는 오늘날의 모습이 담겼다. 여기에 부하 직원과의 불륜, 깡패를 동원한 폭행 등 대중적인 코드가 스며 있다. 유혈이 난무한 데 대해 작가는 햄릿 등 셰익스피어의 비극은 유혈극이지만 아무도 통속적이라고 하지 않는다며 대중성이 강한 본격문학을 쓰고 싶은 게 바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올해 초 만 13년의 동아일보 기자생활을 마감하고 소설가로 전업했다. 오랜 현장 경험을 통해 무엇보다 독자가 중요하다는 것을 터득했다.
박경리의 토지, 조정래의 태백산맥,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 같은 걸작은 모두 독자가 만든 것 아닌가요. 독자의 감동을 끌어낼 수 있는 소설이 좋은 작품입니다.
그는 고교 시절부터 작가를 꿈꿨는데, 나이 마흔을 맞으면서 한번 사는 인생, 내 소원 못 들어 주겠나 하는 마음에 작가의 길로 나섰다고 말한다.
문학 기자로 일할 때 만났던 소설가 최인호 씨는 작가가 되면 여행도 마음대로 다니고 나를 좋아하는 독자도 많이 생기고라고 자랑했지만, 막상 등단 소식을 듣고는 죽을 각오를 하지 않으면 눈 깜짝할 사이에 낙오된다고 충고했다. 소설가 이경자 씨는 작가는 비판뿐 아니라 찬사로부터도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권 씨는 (문학판이) 청운의 꿈을 품고 달려온 문청들의 공동묘지임을 잘 안다고 말했다.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그는 자신을 슬라브족이라고 믿었던 러시아 내 고려인(카레이스키)이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다음 작품이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