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주민과의 끈끈한 유대가 5명 살려
7일 오전 나이지리아 포트하커트의 대우건설 사무소에 평소처럼 출근한 현지인 이매(가명) 씨는 사무소장인 이홍재 상무의 긴급 지시를 받았다.
고속정으로 50분 떨어진 코손 유전지대에 있는 대우건설 가스플랜트 공사 현장에서 한국인 직원 5명과 현지인 1명이 무장괴한들에게 납치됐으니 비상연락망을 가동하라는 지시였다.
이매 씨는 곧 자신이 속한 부족의 친구들과 무장괴한들이 속한 이자(ijaw) 부족 관계자 등 10여 명으로 구성된 협상조를 만들었다.
밥은 먹였어?
이매 씨는 수차례의 전화통화 끝에 피랍 직원들의 안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곧이어 괴한들이 아침 식사를 제공했다는 소식도 들어왔다. 이 소식은 현장사무소를 거쳐 서울 대우건설 본사 피랍 직원 비상대책반에 보고됐다.
7일 오후 10시 반(현지 시간 7일 오후 2시 반). 피랍 직원들의 소재 파악에 분주하던 외교통상부와 국가정보원은 대우건설 측의 연락을 받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루가 지나 괴한들이 피랍 직원들을 석방할 뜻이 있다고 언론에 밝힌 8일 오후(현지 시간).
포트하커트 사무소에서 다시 대책회의가 열렸다. 나이지리아 리버스 주 정부를 도와 괴한들과의 협상에 나설 사람을 뽑기 위해서였다. 토론 끝에 이매 씨가 대우건설의 대리인으로 나서기로 했다.
포트하커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괴한들과 협상을 한 이매 씨는 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던 대우건설 직원들에게 괴한들이 아침을 준 후에는 식사를 제공하지 않았고 피랍 후 장소를 세 번 옮겼다고 설명했다. 얼마 후 피랍 직원들은 풀려났다.
장례식에는 반드시 간다
9일 0시 20분경 피랍된 한국인 직원들이 40시간 만에 풀려난 것은 한국 정부의 요청을 받은 나이지리아 주정부의 긴밀한 협조와 함께 대우건설이 쌓아 놓은 현지의 인적 네트워크가 큰 역할을 했다.
대우건설은 1980년대 초 나이지리아 진출 후 현지화 작업에 주력했다. 피랍 사건이 발생한 코손 유전지대 가스플랜트 시설을 비롯해 대부분의 공사 현장에는 직원의 절반 이상을 나이지리아인으로 충원했다.
올해 3월까지 코손 현장에서 근무한 대우건설 해외사업본부 서회경 대리는 나이지리아는 대통령제 국가지만 커뮤니티로 불리는 부족들이 지역별 영역을 갖고 있다며 커뮤니티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면 외국 기업은 발붙일 수 없다고 말했다.
대우건설은 부족의 주요 행사를 챙기는 것은 물론 화장실 개조 공사까지 해 준다. 특히 이곳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장례식에는 반드시 참석했다.
외국인을 경계하는 현지인들도 이런 노력에 감화를 받았다. 2003년 8월 당시 대우건설 김우성(45) 과장은 포트하커트 인근 에자마 부족에게서 추장 칭호를 받기도 했다. 한국인이 나이지리아에서 명예 추장으로 추대된 것은 옥수수 박사로 유명한 김순권 박사 이후 김 과장이 처음.
이런 인적 유대 관계가 이번 석방 협상에 결정적으로 도움을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