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他们想吃掉他的这笔遗产,”她说,
“그리고 그이가 편지를 해도 답장을 하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직접 찾아간 거예요.
“连回信都不给他,所以他亲自到瑞士去了。
그이에게서 아직 아무런 소식도 없는데. 불행한 일이나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但愿他没遭到什么不测,我一直没有得到他的消息。”
나는 그 부인과 헤어지는 것이 몹시 섭섭하여 그 아이들에게 일 크로이처(13∼19세기까지 남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에서 통용된 십자가가 새겨진 주화-역주)씩을 주고 시내에 갈 때 막내아들을 위해서도 수프에 넣을 흰 빵을 사다 주도록 부인에게 일 크로이처를 맡겼다네. 그리고 나서 우린 헤어졌지.
离开这女人时,我心里很难过,便给每个孩子一枚克罗采,最小的孩子的一枚给了他妈妈,等她进城时好买个面包给他就粥吃,随后我们便彼此道别。
사랑하는 친구여, 자네에게 고백하건대, 내 마음을 도무지 진정할 수 없을 때에 이런 사람들을 보면 광란하던 기분이 모두 가라앉고 만다네. 그들은 생존의 비좁은 테두리 속에 행복하고 침착하게 살아가고, 하루하루 근근이 생계를 꾸려 가면서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 그저 겨울이 오는구나 하고 생각할 따름이라네.
告诉你,我最珍贵的朋友,这样的人在他们狭窄的生活圈子里过得快快活活,泰然自若,一天天凑合过去,看见树叶落了,心里只想到冬天来了。
그 때 이후로 나는 종종 그 곳을 찾아가곤 한다네. 아이들은 나를 무척 잘 따르고 있으며, 내가 커피를 마실 때면 그들에게 설탕을 주고 저녁에는 나와 함께 버터 바른 빵과 신맛 나는 유유를 나누어 먹는다네. 그리고 일요일마다 일 크로이처씩을 주었는데, 저녁 기도 시간 이후 내가 그 곳에 가지 못할 경우에는 음식점 여주인에게 대신 주도록 부탁해 놓았다네.
打那以后,我便常常在外面呆着。孩子们同我搞得很熟了,我喝咖啡的时候,就给他们糖吃,晚上他们还分享我的黄油面包和酸牛奶。星期天,他们总会得到我给的克罗采,要是我做完祷告不回去,便委托女店主代为分发。
그들은 나와 아주 친해져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곤 한다네. 그리고 마을에서 더 많은 아이들이 몰려올 때면, 나는 무엇보다도 그들의 격한 감정과 뭔가를 요구하는 순진한 표현에 기쁨을 느끼고 있다네.
孩子都跟我很亲密,什么事都告诉我。每逢村里有很多孩子来我这里,流露着热烈的情绪以及直截了当地表达他们想要的东西时,我更是乐不可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