娄师德
宋代 王十朋
내 뜻을 거스르면 이유 안 따지고 넘어가긴 어렵지.
얼굴에 침 뱉는데 그 누가 저절로 마르게 두나.
일 다 마무리되어 마음 가라앉고 나서야,
누사덕(婁師德), 그분의 넓은 도량 인정하게 되었지.
(오意由來勿校難, 誰能唾面自令乾. 直須事過心平後, 方服婁公度量寬.)―‘누사덕(婁師德)’ 왕시붕(王十朋·1112∼1171)
누사덕, 여황제 무측천(武則天) 시절 두 차례나 재상을 지낼 만큼 인품과 재능이 출중했던 인물이다. 역사는 그를 인내와 관용의 화신처럼 기록한다. 어떤 연유에서일까. 재상인 그가 자사(刺史)로 부임하는 동생에게 당부했다. 웬만하면 남과 다투지 마라. 동생이 대답했다. 누군가 제 얼굴에 침을 뱉는다 해도, 저 스스로 닦지 절대 다투지 않겠습니다. 형이 말했다. 아니다. 네 얼굴에 침을 뱉었다면 상대가 널 증오한 때문이다. 네가 침을 닦는다면 그자의 뜻을 거역하는 셈이니 외려 화를 돋우게 되지. 침은 잠깐이면 마르니 닦아낼 필요가 없단다. ‘타면자건(唾面自乾·얼굴에 침을 뱉어도 저절로 마르게 둔다)’이란 성어가 이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강한 인내심을 비유한 말이다.
왕시붕은 남송 조정이 금나라에 밀려 남하하자 중원 회복을 위해 결사 항전을 외쳤던 기개 높은 인물. 그는 누사덕이 이민족과의 전쟁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사실을 내심 추앙해 왔다. 다만 대대로 인정받는 그 유별난 인내심에 대해서만은 긴가민가 믿지 못했다. 다툼을 피하려고 자기 뜻을 거역하는 상대에게 관용을 베풀기란 쉽지 않다. 하물며 얼굴에 침까지 뱉는다면 말이다. 하지만 일이 마무리된 후 마음이 평온해지는 걸 경험한 다음에야 시인은 고백한다. ‘누사덕, 그분의 넓은 도량’을 이해할 것 같다고. 이름을 시제로 삼은 건 그 대단한 인내심에 대한 공경의 표시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