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숙종비인원왕후가 쓴 한글문집 3편 발견
이렇게 귀한 음식을 어찌 천한 입으로 먹겠습니까.
왕비 앞에 납작 엎드린 아버지는 딸이 내린 다과를 받고도 뒷걸음질을 쳤다.
조선 중기의 왕비가 입궁 후 생가 부모와의 관계를 세밀히 기록한 한글 문집 세 편이 발견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정하영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는 2006년 5월 충북 충주시의 골동품 사업가 이병창 씨에게서 입수한 문집 세 권을 검토한 결과 저자가 조선 제19대 왕 숙종의 세 번째 정비였던 인원왕후 김 씨로 확인됐다고 8일 밝혔다.
정 교수는 처음엔 후대의 필사본일 것으로 생각했으나 꼼꼼하게 확인 검토한 결과 자료의 제본 형태나 배접 방식의 우아함, 정갈한 글씨와 문장 등에서 왕후가 직접 지은 글로 귀중하게 보관되어 왔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신병주 서울대 학예연구사는 왕비들의 한글 기록은 그 수가 적어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왕실 여인들의 한글 문집은 선조 비였던 인목대비의 계축일기와 사도세자 비였던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 정도만이 알려져 있다.
이번에 발견된 자료는 인원왕후가 1702년 숙종의 정비가 된 뒤 친부모와의 관계를 구구절절 기록한 션군유와 션비유, 자신이 즐겨 읽던 문학 작품을 모은 륙아뉵장 등 총 세 권이다. 션군유에 따르면 부친께서는 궁궐에 출입할 때마다 항상 조심하고 근신하여 다만 몸을 굽혀 목화부리(나막신 앞의 뾰족한 부분)만 보시고 눈을 굴려 곁으로 보시는 일이 없었다고 묘사되는 등 당시 궁중 법도의 엄격함이 마치 영화처럼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정 교수는 인원왕후의 문집에는 궁중 출입을 하던 왕비 부모의 행적과 왕비와 나눈 대화들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당시 왕후 가문의 궁중 생활상을 파악할 수 있다며 그뿐만 아니라 순수 한글 기록인 만큼 18세기 한글 연구 및 궁중 언어 연구에도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고 평가했다.
자료의 검토 작업에 참여한 유림단체 박약회의 서수용 사무총장은 글 내용이 인원왕후의 생애와 부합하고 내가 어렸을 때 등 1인칭 회상조의 문장이라는 점, 생부 김주신의 행적이 조선왕조실록의 국구김주신졸기와 일치하는 점 등을 볼 때 왕후 자신이 직접 썼다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인원왕후 문집에 대한 연구논문을 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소가 이달 말 발간하는 한국문화연구 제12호에 기고해 학계에 보고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