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경찰서 소속 전투경찰 중에는 영어, 독일어, 불어, 한국어 등 4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대원이 있다. 통역병이 아니라 정문경비를 선다. 6살에 영국으로 간뒤 23년만인 지난해국방 의무를 다하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와 입대한 하의지 상경(29)이 주인공.
그가 하는 일은 경찰서 정문 경비. 폭발물 제거 업무도 그의 몫이다. 매일 오후 5시부터 다음날 오전까지 교대로 경찰서 정문 앞에 서서 경찰서에 들어서는 주민들을 안내해야 한다.
처음 경찰서에 왔을 때만 해도 한국말을 제대로 못했다고 한다. 하씨는 "구치소라는 말이 어려워 구치소를 안내해달라는 민원인을 주유소로 안내했던 적이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선임병이 '조수석에 앉은 사람이 누구냐'고 묻자 '조수석'이 사람 이름인 줄 알고 선임병한테 '조수석이 누굽니까'라고 물었다"면서 웃었다. 물론 이젠 어려운 단어만 빼면 의사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다.
그는 "영국과 스위스에서 생활했지만, 한번도 내가 영국인이나 스위스인이라고 생각한 적 없다"고 했다.
외국에 있으면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는 그는 "'세계 시민'이 되고 싶지만 '세계 여권'이 없어 적어도 1개의 국적 선택만 해야하는 상황에서는 한국 국적을 택하겠다는 생각에 입대하게 됐다"고 말했다.
영어나 독일어를 잘하는 하씨가 어학병이 되지 못한 것은 한국어를 잘 못해서다.
통역이나 번역을 위해서는 외국어만큼이나 한국어를 잘해야 하기 때문이다. 카투사가 되지 못한 것은 카투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토익 성적이 없어서다.
스위스 바셀대학교 학부,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공부한 하씨는 "유럽에서는 토익 시험이 알려져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6살부터 계속 외국에서 생활한 내가 한국에서 군대에 가야하는지 몰랐다"면서 "대학원 졸업 후 빨리 군에 입대하라는 통지를 받고 아무런 준비 없이 입대해 토익 성적도 없었고 한국어 실력도 부족했다"고 말했다.
군에 입대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군대에 와서 단체 생활하는 법과 팀 정신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며 "군 입대를 회피한 사람들을 굳이 비방할 생각은 없지만 군대에서의 좋은 경험을 못가지게 된 것은 그들에게 손해"라고 강조했다.
제대 후 뭘 할 건지에 대해서는 아직 생각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학원에 있을 때 '영화의 심리적 효과'에 대한 프로젝트를 진행한 경험과 영화제작사에서 인턴으로 일한 경험이 있다"면서 "심리학 공부를 더할지, 영화제작사에 취직할지는 제대까지 남은 7개월 동안 고민해보겠다"고 했다.
하 상경은 "한국에서의 군경험이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크게 도움이 될것"이라며 "나중에는 한국에서 일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의 표정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