直到稻子变成新米 — 韩承五
일생을 논에서만 살아온 벼에게는 논 밖이 낯설다.
햇빛도, 달빛도, 바람도 논 안에서 받던 것과는 사뭇 다른다.
사람의 발걸음도, 목소리도, 손길도 논 안에서 느끼던 것과는 딴판이다.
쌀로 거듭나려는 벼는 막 탯줄을 끊은 어린아이처럼 지독한 낯섦을 마주하여 스스로를 단련한다.
시골 아스팔트길 위에 길게 깔린 시커먼 망에 벼가 자리를 잡는다.
아스팔프 바닥은 논과 달리 딱딱하다.
농사꾼의 고무래질을 따라 그 딱딱한 바닥을 구르며 벼는 몸을 안으로 안으로 움츠린다.
막 녹에서 나온 무른 벼는 딱딱한 땅위에서 그 몸을 더욱 단단하게 한다.
푸르디푸른 가을하늘에서 내려오는 햇살은 벼에게 무척 따갑다.
그 햇살 하나하나가 광선이 되어 벼의 몸에 사정없이 내리쬔다.
벼 껍질 속 여린 피부는 그 햇살을 받아 누렇게 그슬린다.
신선한 가을 바람은 벼를 두드린다.
논 안에서 한껏 물을 먹었던 벼는 메마른 가을 바람 앞에 그 물을 내뱉는다.
한줄기 바람이 지날 때마다 쓸데 없는 몸속 물을 그 바람에 실려 보내다.
가을 바람 속에서 벼는 몸을 가다듬는다.
.....
작은 지도에는 나오지도 않는 시골 아스팔트길. 경운기가 지나며 벼를 밟는다. 자전거가 지나며 벼를 밟는다.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벼를 밟는다.
벼는 이리저리 밟히면서 자기몸을 추스른다
가을 바람에 길 위를 뒹구는 낙엽이 벼와 섞인다.
노란 은행잎과 누런플라타너스 잎이 낙엽이 되어 벼 위에 떨어진다.
벼는 깊어가는 가을과 함께 점점 더 깊게 말라간다.
밤이 오면 달빛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차가운 서리와 함께 아침이 오면 다시금 몸을 가다듬기를 사흘 정도를 하면 이제 벼는 더이상 벼가 아니다.
그때 벼는 두꺼운 껍질을 벗고 하얗고 투명한 햅쌀이 된다.
......
논 밖으로 나온 벼가 햅쌀로 거듭나는 여정은 이렇듯 길고 고단하다.
그 여정을 함께하는 농사꾼도 고달프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요즘은 건조기계로 벼를 말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힘도 덜 들고 시간도 몇 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기계로 말린 쌀 속에서는 햇살도, 바람도, 사람도 없다.
그 쌀 속에는 가을이 없다.
길 위의 벼는 햇살을 먹고 바람을 먹고 사람을 먹는다.
길 위의 벼는 온전히 가을을 먹는다.
그렇게 거듭난 햅쌀은 깊은 가을 맛을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