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처럼 할머니는 깊이 잠들었고, 이나는 먼 창밖을 본다.
거기엔 여전히 짓다 만 거대한 진회색 시멘트 건물이 놓여 있고 문득 이나는 자신의 삶이 그 건물처럼 짓다 만 채로, 거대하게,
뿌연 안개 속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해가 낮게 드리워져 이나의 그림자가 좀 더 길게 늘어지고 다시 이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멀지 않아 흉한 시멘트 덩어리는 값비싼 브랜드의 아파트로 완성이 되겠죠.
그러나 나의 삶은 여전히 뿌옇게 모호한 채로 거대하게 남아 있겠죠.
저 빼곡한 창문들 그중에 내 것이 될 창문은 하나도 없어요.
나는 저것들 중 어느 하나도 소유하지 못한 채로 그러나 저것들과 함께 늙어갈 거예요.
여기 내 부모의 아파트도 언젠가 빛나는 브랜드의 순간이 있었을 테지만 나는 단 한 순간의 빛나는 순간도 없이 조금씩 낡아가고 바래가는 것밖에는 없어요.
시간이 지나 천천히 부식이 시작되겠죠.
지금은 해가 떠 있는 시간이라 괜찮지만 곧 밤이 찾아와 해가 지면 천천히 어둠 속으로 가라앉게 될 거에요.
어둠 너머로 뻗을 손은 없겠죠.
나의 손은 회색 승용차 아래 깔려 천천히 말라비틀어질 테니까요.
빛나는 것들은 벽에 걸린 옷들뿐이라서 그것들도 금세 회색 먼지를 뒤집어쓰고 볼품없어지겠죠.
그래 나는 늙고 추한 할머니가 될 거예요.
그게 나의 위안이에요. 저 멀리 놓여 있는 수천 개의 아파트들 그것들도 곧 버려져요.
나처럼이요.
내가 가진 것들 내가 먹는 것들 내가 가는 학교 그리고 내가 자주 보는 텔레비전의 일일 연속극과 잠자는 내 방의 할머니 그리고 가장 중요한 옷,
옷들 모 혼방 니트 카디건 블랙 미니스커트 레깅스 캐시미어 목도리 실크로 된 원피스, 와인색 빅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