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혜진자의 손목에는 보기에도 징그러운 한 마리의 독사(毒蛇)가 손
목을 문채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이었다. 그러자 손목의 힘이 일시에
빠지며 정신마저 혼란해지는 혜진자는 제대로 몸도 가누지 못하고 곧 쓰
러질 것처럼 비틀거리는 것이었다. 황급히 돌아섰던 일양자는 즉시 달려
들어 독사를 한칼에 난도질을 쳐 떨어뜨리고
「그만 싸움을 거두시오! 당신은 정말 사람을 죽일 작정이오?」
하고는 비틀거리는 혜진자를 부축했다.
그러나 일양자가 외치는 소리를 듣고도 눈을 부라리던 구원은 냉랭하게
대답했다.
「만일 보통 독사 같으면 내공이 음후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갈 수 없으
나 나의 금선사(金線蛇)는 금강동철(金剛銅鐵)로 만들어진 사람이라도 지
탱할 수가 없소. 만약 손목을 물고 있는 뱀을 자르면 상처를 입은 뱀은
독을 상처를 통해 뿜어내어 한 시간도 못가서 오장으로 퍼져 죽고 말 것
이요. 믿지 못한다면 한번 시험하여 보시구려.」
일양자는 금선사를 자세히 보니 과연 평생을 두고 보지 못한 뱀이라 혜
진자에게 나지막하게 말했다.
「빨리 앉아서 공력을 운행하여 곡지혈(曲池穴)을 폐쇄하고 독이 온 전
신에 퍼지지 않도록 하오.」
이 때 혜진자는 오히려 침착해져서 담담하게 웃으며 정이 담뿍 어린 얼
굴로 쳐다보고 말했다.
「죽는 것도 두렵지 않소. 절대로 그들의 협박에 넘어가지 마오.」
그녀는 말을 마치자 서서히 앉아 눈을 감고 공력을 운행했다. 일양자는
혜진자가 손목이 뱀에게 물린 채로 앉아서 눈을 감고 입가에 웃음마저 띠
우고 있는 모양을 보고는 수 십 년간을 사랑한 옛날이 생각나 말할 수 없
는 정회가 솟아올랐다. 일양자는 등 뒤에서 천천히 노란 보자기를 푸르면
서 구원에게 말했다.
「당신의 목적은 오직 귀원비급을 뺏으려는 것이겠으니 당신의 소원을
풀어 주겠소. 그러나 먼저 금선사 독을 풀어 줘야 하오.」
그러자 구원은 눈썹을 치켜 올리며 꾸짖듯이 말했다.
「내가 만일 당신을 속이려면 아무 약이나 드리면 되지만 나 구모인(丘
某人)은 아직 그런 유치한 사람은 아니오.」
그 말을 듣자 일양자는 마음이 섬뜩해짐을 느끼며 떨리는 음성으로 물
었다.
「그럼, 해독약이 없다는 말이요?」
「생명은 보존할 수 있으나 무공은 완전히 사라질 것이며 많이 살아 봤
자 십년 이상 못 살 것이오. 십년 후 독이 재발한 후엔 기사회생의 영약
이 있더라도 생명을 구할 수는 없을 거요.」
「그럼 십 년만 더 있게 하여 주오. 독만 풀어 준다면 이 귀원비급을 드
리리다.」
그제야 구원은 품안에서 흰 병을 끄집어내더니 푸른 알약을 한 알 입에
넣어 씹은 후 오른 손으로 비룡봉의 손잡이를 열었다. 그러자 봉 끝이 저
절로 열렸다. 그는 혜진자에게로 다가가 약간 긴장한 기색으로 먼저 꿈틀
거리는 뱀 머리를 비룡봉의 갈라진 구멍으로 넣은 후 입에서 씹은 알약을
뱀 대가리에 훅! 하고 뱉었다. 뱀은 물고 있던 혜진자의 손목을 놓고 봉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구원은 그 틈에 손을 봉 자루에서 떼었다. 그
러자 열린 구멍은 또다시 저절로 닫혔다. 구원은 숨을 돌이켜 쉬고 말했
다.
「지금 해독을 해야 하는데 이 산중에는 도구와 약이 없으니 괄창산을
나가서 손을 쓸까 하오.」
일양자는 미간을 찌푸리고 노기 어린 목소리로
「대장부의 일언이 중천금인데 내가 한 말을 못 믿겠다는 거요? 내가 약
속을 이행치 않을까 겁은 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