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원비급은 어떻게 했어요?」
그러나 일양자는 대수롭지 않은 듯
「불길한 물건이니 없어져도 괜찮소.」
하는 것이었다.
「귀원비급으로 저의 생명을 구하겠다는 뜻인 줄은 알지만 아마 저는 오
래 살지 못할 것 같아요.」
일양자는 그녀가 무공을 완전히 잃어버렸으며 앞으로 십년 밖에 더 살
지 못 한다는 말을 차마 할 수는 없었다.
「금선사 독은 풀 수 없는 것도 아니며 구원이 이미 치료해 줄 것을 약
속 했소.」
그러나 혜진자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초연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제가 방금 기력을 운행할 때 이미 독이 내장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느
꼈어요. 더구나 요혈이 막혀 기력이 미치지도 않아요.」
그러자 구원이 혜진자의 말을 받았다.
「독이 심장, 폐, 간장에만 스며들지 않았다면 생명은 보존할 수 있소.
다만 당신은 공력을 완전히 잃을 뿐이오. 독도 재발하지 않을 거요.」
혜진자는 마음이 섭섭해짐을 느끼며 구원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
다.
「그것은 죽는 것보다 못한 일인데 왜 자비심을 베풀었소?」
구원은 방금 싸울 때에 혜진자가 몇 번이고 자기를 봐준 생각이 나자
양심의 가책을 받고 머리를 숙인 채 아무 말도 못했다.
일양자는 웃으며 위안하듯
「십년이란 세월은 그리 짧은 세월이 아니오. 일단 치료를 받은 후 조용
한 곳을 택하여 십년을 당신을 위해 살겠소.」
이 말을 들은 혜진자는 수심이 가득 찼던 얼굴에 희색이 감돌고 입가에
는 웃음마저 띠우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듯 했다.
옆에서 보고 있던 하림도 눈물을 흘리며
「저와 오빠도 사부님을 모시고 십년을 같이 지내겠어요.」
그리고는 양몽환을 향하여
「오빠도 저와 같은 생각이죠?」
하는 것 이었다.
「물론!」
하는 양몽환의 묵직한 대답은 하림과 혜진자의 마음을 흐뭇하게 해주었
다.
「그곳에 가면 나도 백학을 한 마리 잡아 키워서 사부님 드릴 묵인철갑
사를 잡아 오도록 시키겠어요.」
혜진자는 하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불쌍하게도 나의 제자가 된 너에게 한 수도 배워 주지 못했는데 내가
이 모양이 되었으니……」
이때 웅성웅성 하는 소리가 들리며 요란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달아
난 엽혜가 비급을 짊어지고 수중에 호미변(虎尾 革+便)을 든 채 앞서 절
벽을 내려오고 있었다. 그 뒤로 문공태와 교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뒤쫓아 오고 있었다.
세 사람이 도루 돌아옴을 이상하게 여긴 일양자는 앞을 막으며 뛰어 나
가려는데 구원이 먼저 불편한 몸도 불구하고 비약하여 오른 손의 비룡봉
을 휘두르며 엽혜 앞을 막았다.
그러자 엽혜는 호미변으로 한 수 신용반미(神龍盤尾集)로 구원을 내리
쳤다. 구원은 급히 몸을 돌리며 비룡봉으로 영운봉일(迎雲捧日) 한 수로
막았다. 엽혜는 변을 회수하며 구원에 바싹 붙어 왼손을 앞가슴 쪽으로
밀어 내면서 오른 손을 펴자 호미변 끝이 구부러지면서 비스듬히 구원의
어깨를 쳤다. 느린 듯한 그 한 수에 하마터면 구원은 맞을 뻔 했으나 다
행히도 오른쪽으로 수척이나 몸을 굽혀 일격을 피했다. 그 때 뒤쫓던 문
공태가 가까이 와서 청죽장을 휘둘러 화룡점청(畵龍點晴)의 수로 엽혜의
등 뒤 명문혈을 사정없이 갈겼다.
그러나 추풍안도 만만치 않은 존재인지라 문공태의 일격을 쉽게 피하고
재차 공격해 올 문공태의 일격을 피하려다 전세가 불리함을 자인하고 엽
혜는 납작 땅에 엎드렸다.
엽혜가 문공태의 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