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꾸고…… 정말 당신의 수법은 고명하오.」
일양자는 노기가 충천했다.
「뭐라고? 나는 아직 비급을 꺼내본 일도 없는데 그 말이 무슨 뜻이
오?」
그러자 이창란은 냉소하며
「여러 사람 앞에서도 내가 가짜와 바꾸려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소. 비
록 천용방은 보잘 것 없는 무리들이 모였지만 당신네들의 구대문파는 거
들떠보기도 싫소!」
이때 옆에 있던 등인대사가 손을 저으며 나섰다.
「현도관주는 생전 거짓말을 않는 사람이오. 우리는 비급을 손에 넣은
후 펼쳐 보지도 않았소이다.」
이창란은 비웃음이 가득 찬 얼굴로 말했다.
「그리고 보니 좋은 사람을 원망했군! 비급은 지금 문형 손에 있으니 여
러분이 보시면 알 것이오.」
문공태는 비급을 들고 천천히 두 사람 앞으로 왔다. 그리고는 땅위에
비급을 펼쳤다. 천용방의 세 단주, 천중사추, 양몽환 등 이곳에 모인 사람
이 에워만 가운데 일양자가 주사(朱砂)로 붉게 귀원비급이란 네 글자가
쓰인 책표지를 넘기자 안에는 흰 종이에 큰 자라 한마리가 그려져 있었
다. 현도관주는 미간을 찌푸리며 또 한 장을 넘겼다. 거기에는 또 종이에
검은 글이 한줄 쓰여 있었다.
「콩을 많이 먹으면 설사가 나는 법이오. 두부를 끓여 먹으면 살생도 않
고 술안주에도 제일이다.」
계속 책장을 넘겼으나 여러 가지의 짐승들을 그려 놓았을 뿐이었다. 그
리고 마지막 장에는
「오셨다 가시느라고 수고가 많았소. 여기 여러 가지의 짐승들이 노고
(勞苦)를 치하 합니다.」
어이가 없어 눈만 껌벅거리던 일양자는 즉시 장진도에 쓰인 글씨와 비
급의 글씨를 대조했다. 그리고는 그것이 가짜라는 단정을 내렸다.
일양자는 장진도를 던지고 탄식하며 말했다.
「귀원비급은 이미 먼저 온 사람이 가져갔고 우리는 그 사람의 속임수에
빠졌소!」
수백 년간을 무술계에 전해 오던 진귀한 책은 이로써 다시 미궁에 빠지
고 그들은 모두 멍하니 말문이 막혀 서 있었다. 이창란은 일양자의 기색
과 거동을 보아 일양자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느끼자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교곤은 다 죽어 가는 사제를 업고 달아나고 있는 것이었다.
이미 해는 저물어 가고 허황하기 짝이 없는 시간은 말없이 흐르기만 했
다. 이창란은 일양자와 문공태를 번갈아 보며 작별을 고했다.
「삼년 안에 구대문파를 무술대회에 초청할 것이오, 그때 만납시다.」
그리고는 용두 지팡이를 들고 천중사추 등 부하를 거느리고 자리를 떴
다.
개비수 최문기는 이창란의 모습이 사라지자 구원을 보고 냉랭하게 말했
다.
「당신은 천용방주에게 약속한 육개월의 시간을 이행하겠소?」
구원은 냉소하며
「내가 죽지 않는다면 물론 약속을 이행할 것이오.」
그러자 제원동이 나섰다.
「그러시면 오시기를 공손히 기대하고 있겠소. 그러나 무술계 구대문파
가 무당파(武當派)의 졸장부들을 그냥 두지 않을 것을 기억해 두시고 혼
자 힘으로 당할 수 있는지를 잘 생각해 보시기 바라오.」
하고는 떠나 버렸다.
등인대사는 제원동이 사라지자 선장을 쥐고 뒤따라가려는 것을 현도관
주가 제지했다. 그러자 수심이 가득 찬 얼굴로 가지 못하고 서있었다.
천용방 사람들이 돌아간 후 문공태는 일양자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천용방의 웅심이 대단하오. 우리들도 일찍이 준비해야 하겠소.」
하고 몸을 돌려가려는데 구원이 다급하게 불러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