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공태는 고개를 돌리며
「무엇을 묻겠단 말이오?」
「아직 두 가지 일이 해결되지 않았으니 추후라도 결산할 날을 결정해야
할 것 아니요?」
「흥.」
지금이라도 좋다면?」
「오늘은 혜진자의 사독을 치료해야겠소.」
「그럼 화산 절봉에서 기다리겠소. 언제든지 오시오.」
내뱉고는 어깨를 흔들며 돌아서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문공태가 사라지자 구원은 혜진자 옆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안심하십시오. 당신의 깊고 웅후한 내공으로 서너 시간 내에는 독이
내장까지 스며들지 않을 것이며 또한 저의 옥로해독단의 힘으로 한 사흘
은 지탱할 수 있을 것이니 괄창산만 나가면 제가 곧 약을 처방하여 독을
풀겠습니다.」
혜진자는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죽는 것은 두렵지 않소만 치료를 받아 내가 완쾌되면 기필코 당신에게
복수할 것이니 조심하시오.」
구원은 웃으며
「얼마든지! 그러나 온 천하를 뒤져도 당신의 공력을 회복시킬 약은 없
을 것이오. 복수 할 생각은 아예 마시오.」
혜진자는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리쉴 뿐이었다. 그러자 일양자가 나서
며
「지금 그런 이야기 할 때가 아니오. 속히 갑시다.」
하고는 하림과 동숙정에게 혜진자를 좌우에서 부축하게 하고는 길을 재촉
했다.
당대 명성이 자자한 여협이었지만 뱀독에 상처를 입은 혜진자는 혼자서
는 한 발도 움직일 수 없는 가련한 신세가 되었다.
하림은 너무도 안타깝고 슬퍼 눈물이 줄줄 흘러 내렸다. 사부님의 분부
이었으나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를 몰랐다.
하림은 양몽환에게 말했다.
「오빠! 사숙님의 병을 고치려면 어떤 약이 제일 좋을까요?」
양몽환은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알 수 있나……」
그러자 하림은 구원을 노려보며
「당신의 금선사가 나빠요. 만일 그 흰 거학만 만났다면 틀림없이 죽여
버렸을 거예요.」
하림의 말을 들은 일양자는 매우 감동했다.
그 순간, 그의 머리 속에는 당대의 풍진기인(風塵奇人)의 생각이 나자
구원에게 물었다.
「구형! 금선사독은 정말 온 천하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도 고칠 사람이
없겠소?」
구원은 냉랭하다 대답했다.
「만일 저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면 명의를 구해 보시구려!」
일양자는 웃으며
「강서 파양호에 있는 묘수어은 소천의가 독증을 잘 고친다는 소문인
데?」
「금선사와 묵인철갑사는 백이십팔 종류의 독사 가운데 가장 독이독한
것이오. 보통 사람은 한 번 물렸다면 곧 죽고 마는 것이오. 그러나 나는
평생 동안 뱀을 다루어서 뱀독을 치료하는 데만은 자신이 있소 또 나의
옥로해독단은 천하의 명약으로 성품(聖品)이라고는 못하지만 뱀독에는 매
우 효과가 있는 것이오. 금선사와 묵인철갑사가 아닌 뱀에게 물렸을 때에
는 단 한 알로서도 완전히 고칠 수 있는 명약이오. 제 아무리 묘수어은
소천의가 의술에 능해도 독을 치료하는 데는 저보다 못할 것이오. 또 묘
수어은은 벌써 무술계에서 은퇴하였는데 비록 파양호에 있다지만 찾는다
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오.」
「그렇다 하더라도 구형이 독을 치료한 후에 묘수어은을 찾아가 치료할
수 있는가를 알아 봐야겠소.」
구원은 흥! 하고 냉소를 할뿐 입을 다문 채 묵묵히 걷기만 했다.
길을 걸으면서도 일양자는 혜진자가 아픔을 참지 못하고 가늘게 떨며
신음할 때마다 그녀의 이마에서 흐르는 땀이 피보다 더 진한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