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유학하던 어느날 나는 집에서 텔리비전을 돌리다가 MBC의 <일요일 밤에>의 <양심 냉장고>라는 프로그램을 봤었다. 한국에서 유명한 개그맨 이경규가 나와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며 정지선을 지키는 운전자에게 냉장고를 선물하는 프로였다. 나는 “그까짓 정지선 지키는 일이 뭐가 그렇게 어려운 일이라고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었지?” 라는 생각에 <양심 내장고>를시시한 프로로 느꼈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정지선을 지키는 운전자가 한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그런 사람이 과연 한 명도 없을까?” 라는 호기가 생겨서 그 프로그램을 끝까지 지키보게 되었다. 그런 가운데 천신만고 끝에 정지선을 지키는 운전자가 드디어 나타났다. 이경규가 기뻐서 흥분할 때 나도 함께 뛸 듯이 즐거워 동요되었다. 이경규는 환호를 외치며 뛰어가 양심을 지킨 자동차의 창문을 두드리며 운전자에게 “축하합니다. 우리 대한 민국의 양심을 당신이 지키셨습니다.”라는 축하 메세지를 전한 뒤에 “양심멘”에게 수상 소감을 부탁하였다. 하지만 우리의 “양심맨”은 뜻밖에도 두 발이 없는 반신 불구의 장애인이었다.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던 사람들이 커다란 충격을 받은 것처럼 모두들 잠깐동안 할 말을 잃었었다. 나도 마찬가지로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아 한동안 넋을 잃었었다. 반신불구의 장애인도 자신의 양심을 지킬 줄 아는데 건강한 신체를 가진 우리들이 못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후로 <양심 냉장고>는 사람들이 평소에 무심코 지나치는 양심을 일깨워주는 프로로 시청률이 대폭 높아졌었다. 나는 그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가슴을 움켜쥐면서 나의 양심에 가책을 느낀 지난날의 일들을 떠올리곤 했었다.
고2때의 일이다. 대학 입시을 앞둔 우리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시험과 산더미처럼 수북이 쌓인 문제집에 매달려야 했었다. 학교에서는 우리의 사기를 북돋아주기 위해 중간고사에서 1등,2등,3등을 차지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겠다고 했었다. 늘 가난에 쪼들리는 나는 “장학금”이라는 말에 몹시 눈독을 들이게 되었다. 이 장학금만 받을 수 있다면 부모님의 부담도 덜어드릴 수 있고 책도 살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반장으로서 담임선생님의 사무실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나는 선샘님의 외출을 틈타서 컴퓨터와 서류를 뒤져 중간고사 문제를 찾아냈다. 나는 마구 뛰는 가슴을 가라앉히며 시험문제 파일을 나의 이메일로 보냈었다. 그리고 나는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시험 문제를 꼼꼼히 풀어 보았다. 격국은 중간고사에서 나는 막상막하한 친구들을 제치고 1등의 장학금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며칠 후 나는 양심의 가착을 뼈에 사무치도록 느끼게 되었다. 시상식에서 사람들이 다들 내가 치사한 방밥을 써서 1등을 했다는 것을 눈치 챈 것 처럼 보였고 주위에서는 “쟤 양심에 털났어!”라는 야유 소리가 쏟아져 나를 휩쓰는 것 같은 양심의 아픔을 느꼈다. “난 돈 몇 푼에 넘어가서 양심조차 지키지 못한 놈이로구나! ” 라고 스스로가 원망스러워 쥐구멍에라도 들어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날부터 “난 날 믿어주시는 선생님을 배신하고 비겁한 수단으로 친구들을 제쳤어!”라는 양심의 가책이 병처럼 되어 자나 깨나 내나 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또한 “남들이 이미 알아챘나?” 라는 두려움의 그림자가 내 뒤를 계속 따라다녔다. 그래서 한동안 나는 누구와도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어느 누구와 말도 안한 채 마음을 걸어잠그고 우울하게 지내었다. 마치 가시방석에 앉은 듯이 안절부절못한 나는 견디다 못해 목구멍에 가시처럼 결려 있던 말을 짝꿍한테 털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