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 자랑하는 쾰른 대성당 앞 광장을 뒤덮은 것은 잉글랜드 깃발이었다. 성당으로 오르는 계단을 가득 채운 잉글랜드 축구팬들은 얼굴에 붉은 십자가를 그리고 깃발로 몸을 감싼 채 떠나갈 듯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21일 최악의 라이벌 잉글랜드-스웨덴전이 열린 라인에네르기슈타디온으로 향하는 첫 관문인 쾰른 역의 풍경은 소란스러웠다. 역에서 내린 이들은 바로 앞의 쾰른 대성당 앞에서 일단 한바탕 시위를 벌인 뒤 버스나 다른 전철로 갈아타고 경기장으로 몰려갔다.
전철 안에서부터 맥주 파티가 시작됐다. 사방이 온통 잉글랜드 팬이다. 누군가 구호를 외치자 여기저기서 따라 외쳤다. 이미 거나하게 취한 몇몇 팬은 전철의 통로를 가로막고 다른 독일 시민들이 내리려는 것을 가로막는 등 볼썽사나운 모습도 보였다.
경기장 안팎에는 무장 경찰과 경찰견, 그리고 앰뷸런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악명 높은 잉글랜드의 훌리건을 막기 위해 조직위원회는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이들에게는 처음부터 표도 팔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몰라 감시의 눈초리를 늦추지 않았다.
경기가 시작되기 직전 스웨덴 팬들이 먼저 자리를 잡았다. 1만여 스웨덴 팬은 노란색 상의를 입고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며 고함을 질렀다. 이 모습을 본 잉글랜드 팬들은 북소리에 맞춰 짝 짝 짝짝짝 짝짝짝 짝짝 잉글랜드 하는 구호로 맞섰다. 한국의 붉은악마들도 자주 이용하는 리듬이다. 잉글랜드 팬들은 붉은색 또는 흰색 상의를 입었다.
경기장 주변에서는 사람들이 연방 맥주를 마셔댔다. 잉글랜드 팬이라는 조 스미스(41) 씨는 최소 3만 명은 경기장에 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웨덴의 린드그렌 마츠(41) 씨는 오랫동안 스웨덴이 잉글랜드의 발목을 잡았기 때문에 두 팀은 뿌리 깊은 라이벌 의식을 갖고 있다. 오늘 경기는 매우 터프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경기장의 4분의 3을 잉글랜드 팬이 점령한 채 경기가 시작됐다. 잉글랜드는 북을 동원해 잘 맞춰진 합창대처럼 노래를 불러댔다. 이에 맞서는 스웨덴 응원단은 함성 크기에서는 밀렸지만 대다수가 경기 내내 1분도 쉬지 않고 서서 응원하는 열정을 보였다.
초반에는 조 콜이 맹활약한 잉글랜드가 선전했지만 후반 들어 체력으로 밀어붙이는 스웨덴이 우세해 결국 2-2 무승부. 1968년 이후 잉글랜드가 스웨덴을 한번도 이기지 못한 바이킹 징크스는 계속 이어졌다. 잉글랜드는 이날 경기까지 포함하면 38년간 스웨덴과 8무 4패를 기록했다.
경기 중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양 팀 선수들은 열심히 뛰었지만 과격한 태클은 비교적 자제한 편이었다.
그러나 우려했던 일은 경기 후 일어났다. 일제히 쏟아져 나온 양쪽 응원단은 뒤섞인 채 감정을 폭발시켰다. 경기장 인근에서 일부 팬이 맞붙어 몇몇 잉글랜드 팬이 스웨덴 팬에게 맞아 피를 흘리며 병원으로 실려 갔다. 곧바로 경찰이 출동해 더 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이미 의자며 테이블을 서로 집어던져 난장판이 된 상태였다.
쏟아져 나오는 인파로 쾰른 역까지 차들이 거북이걸음을 했다. 밤늦도록 양 팀의 깃발과 팬들의 함성으로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