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팟 숭배자
[컬트 브랜드의 탄생 아이팟: 리앤더 카나 지음•이마스 옮김]
가장 작고, 가장 얇고, 가장 많은 노래(1000곡)를 저장할 수 있다고 소개된 이 하드 드라이브형 디지털 뮤직플레이어에 대한 여론의 최초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아이팟은 디지털 뮤직 플레이어 가운데 최초의 제품도 아니었고, 최대 용량도, 최저 가격도 아니었다. 아이팟의 영어 약자를 따서 바보들이 값을 매긴 기기 독창적인 제품인 체한다는 식으로 조롱하는 평가도 많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 제품은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출시 3년 만에 아이팟의 판매량은 1000만 개를 돌파했다. 소니 워크맨의 첫 출시 후 3년간 판매량은 300만 개였다. 비즈니스 2.0은 2010년까지 5억 개, 지구상의 인구 15명당 한 명꼴로 디지털 뮤직플레이어를 갖게 될 것이며 그중 아이팟의 점유율이 압도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이팟의 이런 성공은 도대체 어떻게 가능했으며, 우리의 생활을 어떻게 바꿔 놓고 있는가.
미국의 정보기술(IT) 전문 온라인 뉴스 서비스 와이어드 뉴스의 편집자인 저자가 쓴 이 책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간다. 저자는 아이팟의 성공신화를 새로운 음악매체의 본성에 대한 탁월한 통찰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콘텐츠의 3박자를 결합한 시너지 단순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디자인 소비자의 열정이 창출한 자율적 마케팅의 승리로 분석한다.
아이팟은 워크맨이 창조한 개인적 음악의 공간을 깊고, 넓게 확장했다. 워크맨이 한 장의 음반에 담긴 곡들에 둘러싸인 얕은 참호에 불과하다면 아이팟은 디스코텍 분량의 곡들의 협곡을 만들어 냈다. 워크맨이 작은 텃밭이라면 아이팟은 방대한 영지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하드웨어(아이팟), 소프트웨어(아이튠스), 온라인 서비스(뮤직스토어)를 동시에 구축할 수 있었던 애플의 기업문화에 있었다.
애플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로 분화해 가는 PC업계에서 완고하게 종합제조의 길을 고집해 시대에 뒤떨어진 공룡기업이란 비판을 받았지만 그 약점을 강점으로 전환한 것이다.
애플의 위력은 디자인에서도 확인된다. 아이팟은 여러 IT 제조사의 생산품을 모아 조립한 제품이다. IT 제조사들이 감탄한 것은 여러 부품을 매끈히 결합해 낸 조립기술이었다.
수많은 버튼이 달린 FM라디오 수신기 같았던 초기 디자인을 심플하고 세련된 이미지로 구축한 마술도 놀랍지만, 전통적으로 검은색의 이어폰 색깔을 본체와 같은 하얀색으로 통일한 것이 화룡점정이었다.
이후 마케팅의 주역은 기업이 아닌 소비자였다. 미국에서 대규모 전국 마케팅의 연간비용은 평균 2억 달러가 드는 데 비해 애플은 첫해 2500만 달러, 이듬해에 4500만 달러만 썼다.
그러나 대중은 스스로 아이팟이 들어간 실루엣 사진을 만들어 냈고. 자비를 들여 비상업적 인터넷 동영상 광고를 만들며 아이팟의 전도사가 됐다. 데이비드 베컴 같은 스타들도 자발적으로 아이팟을 이용하는 모습을 노출하며 이 대열에 동참했다. 컬트 브랜드란 책의 제목은 아이팟을 둘러싼 종교적 숭배에 가까운 이런 이상열기를 지칭한 것이다.
아이팟이 가져온 문화혁명도 흥미롭다. 나이트클럽에서 음악의 공급자(DJ)와 수요자(춤꾼)의 경계가 허물어졌다. 저장된 곡들을 무작위로 선곡해 재생하는 셔플 기능으로 인해 과거 작곡가의 통제 아래 있던 노래가 독자적 생명력을 지니게 됐다. 평론가들은 이를 미적 통제의 상실이라고 비판하지만, 자신들의 일상적 시간과 공간을 음악적 상상력을 통해 자신의 통제 아래 두려는 현대인들의 욕망을 반영한다는 해석도 등장했다.
다시 한번,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마셜 맥루한의 통찰이 빛을 발하고 있다. 원제 The Cult of iPod(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