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불 좀 빌릴 수 있을까요?” 담배 한 대 피워물고, 불에 대해 생각해 본다. 아무 때나 빌릴 수 있는 불, 누구든 아무한테나 옛소 하고 빌려주는 불, 식당·술집에 널린 홍보용 1회용 라이터와 성냥들. 불을 이토록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건 생각해보면 너무 죄송한 일이다.
조용히 혹은 흔들리면서 마음 속 밝혀주는 소박한 꿈
불. 인류와 문명을 현재까지 끌고 온 원동력이다. 어둠을 밝혀주고, 몸을 데워주고, 음식을 익혀주고, 도구를 만들게 해준, 인간을 인간답게 해온 힘이자 자연이 베푼 최고의 혜택이었다. 선사시대인들은 죽어라 하고 나무를 비비고 돌을 부딪쳐 불을 얻었다. 이렇게 어렵사리 얻은 불을,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재를 덮고 애지중지 보관하는 일은 우리나라 며느리들의 최대 과제 중 하나였다. 불 꺼뜨린다는 건 모든 시어머니들에게 결코 용남할 수 없는 중대사태였다. 이런 일상사는 우리나라에서 100여년전까지 이어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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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시대 부싯돌과 부싯돌주머니
2 자기로 만든 서등. 글을 읽을 때 켜던 등잔이다.
3 밑에 재털이를 곁들인 나무 등경
어둠. 매일 하루도 빼먹지 않고 우리에게 찾아온다. 선조들은 안방으로, 부엌으로, 사랑방으로 쉬지 않고 찾아오는 밤을 불로 다스렸다. 방마다 등잔불을 밝혔다. 호롱불을 밝히고 남폿불을 밝혔다. 어른들은 기름 닳는다 꾸짖으며 자주 불을 껐다. 저녁 밥도 해 지기 전에 일찍 해먹었다. 이런 일상이 수십년 전까지 이어져 왔다.
성냥·석유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건 조선 말기였다. 전깃불이 전국에 고루 공급된 건 불과 수십년 전이다. 그래서 부싯돌, 화롯불, 등잔 이런 것들은 지금도 우리들에게 고향처럼 어머니품처럼 그리운 이름들이다. 번쩍번쩍 하는 전깃불이 들어오기 전까지 선인들의 일상을 밝혀주던 조명기구들을 만나러 간다. 등잔이다. 등대가 어둔 세상을 비추어 앞날을 향해 나아가게 하는 희망을 뜻한다면, 등잔은 조용히 그리고 간혹 흔들리면서 마음 속을 밝혀주는 소박한 꿈이겠다.
지구촌 ‘인간 가족전’ 사진 전시 공간도
한국등잔박물관의 외형은 수원 화성의 공심돈을 본떠 설계한 것이다. 돈이란 성곽 높은 곳에 쌓아 적을 쉽게 관찰하고 공격할 수 있게 만든 방어시설이다. 공심돈은 내부를 비어 있게 만든 돈을 뜻한다. 국내 유일의 이 소중한 등잔박물관을 설립한 분은 산부인과 의사 김동휘씨다. 평생 수집해온 등잔과 촛대 등 생활용품들을 1987년부터 이곳에 전시했다. 박물관으로 들어서니 우선 4천원을 내라고 했다. 사설 박물관이긴 해도 좀 비싼 편이다. 1층엔 조선시대 양반 집에서 사용하던 생활용품들을, 2층엔 선인들이 직접 사용하던 등잔과 등잔대, 촛대, 도자기 등을 전시했다. 3층에선 1년에 5~6회 특별기획전이 마련된다. 지하층도 있다. 김동휘씨가 각국을 여행하며 찍어온 다양한 표정의 주민·관광객 사진들을 ‘인간 가족전’이란 주제로 전시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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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시대 은입사 촛대
2 조선말 나무 등가와 등경
3 조선후기의 여러가지 유기 촛대
4 조선 중기의 지승공예등잔. 한지를 꼬아 만든 실로 엮어 등잔대를 만들고 옻칠로 마감한 희귀한 등경이다
1층엔 양반가의 부엌과 찬방·안방·사랑방을 재현해 놓았다. 부엌엔 부뚜막·솥·절구·항아리·놋그릇, 찬방엔 찬장·다듬잇돌·홍두깨·도시락·떡살·화로·인두, 그리고 손님접대와 자녀교육의 공간인 사랑방엔 거문고·화로·갓·요강 등을, 안방엔 장롱과 화로·담뱃대·갓 등을 전시했다. 물론, 방마다 빠지지 않고 다양한 모양의 등잔과 등잔대, 촛대 등이 전시돼 있음은 물론이다. 철제 촛대에 수공으로 은실을 섬세하게 상감해 넣은 은입사 무쇠촛대와 느티나무 뿌리로 만든 화로, 어른 주먹만한 아기용 요강 등이 눈길을 끈다. 1층에선 조선 말기 직접 사용하던 나막신과 징을 막은 징신, 미투리 등도 볼 수 있다.
2층으로 오르는 계단 옆엔 세계 각국의 등잔들이 따로 전시돼 있다. 이란의 촛대, 스리랑카의 기름등잔, 프랑스의 등잔과 촛대, 타이·일본·중국의 기름등잔 등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 등잔들은 시대별로 나뉘어 전시했다. 조선 후기의 백자 등잔들을 먼저 만난다. 손잡이가 없는 호형등잔과 손잡이가 달린 등잔이 구별된다. 해설사 임미향씨가 말했다. “손잡이가 없는 호형 백자등잔은 일제강점기 이전에 쓰던 것이고요. 손잡이 달린 것은 일본에서 들어온 등잔입니다.”
선인들 글 읽는 소리 낭낭하고 부부 정담도 도란도란
임씨는 “석유가 들어오기 전인 조선말 이전엔, 등잔이나 접시형 기름받이에 피마자기름·돼지기름·콩기름·동백기름 등 다양한 기름을 넣고 한지나 솜 등을 꼬아 만든 심지를 꽂아 불을 밝혔다”고 덧붙였다.
등잔은 세분하면 등잔과 등잔받침으로 나뉘지만, 둘을 통틀어 등잔이라 부른다. 등잔을 얹거나 걸어두는 등잔대를 등기구라 부르는데, 나무로 만든 목등잔이 가장 많다. 등잔대는 맨 위에 등잔을 하나 얹도록 한 등가와, 등잔 여러 개를 높이가 다르게 걸어두도록 한 등경으로 나뉜다. 부잣집이나 사찰 등에서 주로 사용했다는 철제·청동제 등가나 등경도 볼만 하지만, 정감이 가는 것은 나무로 만든 등가·등경들이다. 여러 무늬나 글씨를 새긴 것들도 있고, 받침대에 서랍을 달거나 나무를 파 재털이로 쓰도록 한 것들도 있어 흥미롭다. 부귀와 아들을 많이 얻기를 기원하는 ‘부귀다남’이란 글씨를 새긴 등잔도 볼만하다. 다 낡고 선인들의 손때가 묻은 옛 물건들이다. 등잔불을 밝힌 방에서 선인들은 글을 읽고 부부간 정담을 나누고 또 술을 따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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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화촉. 궁궐이나 지위 높은 집안에서 썼던 밀초는 일반인들은 혼례식 때만 사용했다.
2 자기 쌍심지 서등
3 밤 외출 때 들었던 제등의 한가지
구리합금으로 만든 유기등잔이나 유기촛대는 고려~조선에 걸쳐 부잣집 안방이나 사찰에서 주로 사용해 온 것들이다. 고려시대부터 나타나는 양식이라는, 고사리가 말린 모습의 등경이 인상적이다. 조선시대 궁중이나 고관대작들이 사용하던 밀랍에 다양한 색상의 꽃무늬를 새긴 초 화촉도 볼거리다. 일반인들은 이 초를 혼례식 때만 쓸 수 있었다. 혼례식을 올린다는 뜻으로 쓰이는 화촉을 밝힌다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백자로 만든 좌등은 방의 바닥에 가까운 쪽을 밝히기 위한 등잔이다. 글을 읽을 때 켜는 서등이 여기에 속한다. 심지를 돋우는 부분을 한개, 두개(쌍심지) 또는 네개(사심지)로 만든 것까지 있다. 밝기를 높이기 위한 지혜다. 화가 나 눈을 부릅뜨는 모습을 두고 ‘눈에 불을 켠다’라든지 ‘눈에 쌍심지를 돋운다’는 표현이 실감나게 다가온다. 밤에 외출할 때 들고 나가거나, 의식에 쓰던 제등도 여러가지다. 주로 사각형 모양의 쇠틀 안에 초를 꽂고 천이나 한지 등으로 씌운 것이다. 청사초롱·홍사초롱이 여기에 해당한다. 재질은 나무나 철, 놋쇠 등 다양하다.
부싯돌부터 삼국·고려·조선시대 것들 시대별로
순라꾼들이 밤에 순찰 돌때 쓰던 조족등도 흥미롭다. 발쪽을 비춘다 해서 조족등인데, 도적을 잡을 때도 쓰므로 도적등이라고도 불렀다. 겉모습이 박처럼 생겼는데, 나무나 쇠로 틀을 하고 겉에 기름종이를 두껍게 발라 어둡게 하고 밑쪽은 터진 모습이다. 안에는 돌쩌귀가 있어 등을 어떤 방향으로 들어도 촛불이 꺼지지 않도록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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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순라꾼들이 들고 다니던 조족등
2 용머리장식 나무등경. 박물관 사진도록을 찍은 사진
3 거북 등에 학이 받치고 선 모습의 촛대와 철제 등가
푸른 녹에 덮인 부식이 심한 고려시대 유기촛대들과 다등식 토기등잔 등 삼국시대 등잔들을 보고 나면 옆 전시대에서 부싯돌과 부싯돌 주머니를 만나게 된다. 두개의 작은 돌을 부딪쳐 말린 풀잎 따위를 비벼 만든 불쏘시개에 불을 붙였으리라. 표주박, 마패, 그리고 각양각색의 촛대와 등잔대가 함께 전시돼 있다. 거북 등에 학이 서서 부리로 촛대꽂이를 받치고 선 철제촛대가 눈길을 끈다.
지하층의 ‘인간가족전’ 사진들까지 둘러보고 나오는 데 1시간이면 충분하다. 박물관 앞 뜰에는 석등과 연자매·물방아확·문인석 등 석물이 전시돼 있다. 박물관엔 해설사와 학예사가 대기한다. 해설사가 평일엔 오전 10~오후 2시30분, 주말엔 오후 1시~5시에 대기하며 소략한 설명을 해준다. 전시물에 대한 더 자세한 사항을 알고 싶으면 안내석 앞에 비치된 등잔박물관 전시물 ‘도록’ 견본을 참고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