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질하며 마음의 평화 일구었죠
이 나이 이거 거저먹은 나이 아닙니다.
고령화 사회에 대한 우려가 팽배한 요즘 나이 드는 것도 눈치가 보인다는 소설가 박완서(76사진) 씨. 최근 새 산문집 호미(열림원)를 낸 그는 거의 다 일흔 넘어 쓴 글이라 책을 내는 것도 송구스럽다면서도 허투루 먹은 나이가 아니라고 단호하게 덧붙였다.
경기 구리시 아차산 자락에 자리 잡고 산 지 9년째. 박 씨는 집 앞마당에 꽃밭을 만들어 가꾸면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과 평화를 맛봤다고 말한다. 목련, 매화, 살구꽃, 앵두꽃, 라일락. 박 씨는 이 나이까지 살면서 가슴 터질 듯 격렬했던 행복도 있었지만 그런 행복감에는 언제 깨질지 모르는 불안감이 서려 있었는데, 자연의 질서를 긍정하고 순응하는 행복감에는 불안이 없다고 강조했다.
제목 호미는 꽃밭을 갈 때 애용하는 농기구다. 박 씨는 호미는 김을 맬 때 손으로 만지는 것처럼 흙을 느끼게 해준다. 돌아보니 내 삶이 때로는 호미자루 내던지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후비적후비적 김매기를 멈추지 않았던 것이라며 호미질을 인생에 비유했다.
정치권에 대한 질타도 했다. 노망이려니 듣소라는 제목의 글에서 워낙 진흙탕을 많이 처발라서 내가 누군지 상대방이 누군지도 분간 못하는 게 아닐까, 저 꼴 보기 싫어 못 살겠다라고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게 그들의 이전구투는 넌더리가 난다고 말했다.
박 씨는 못 살겠으면 갈아보면 된다고 믿을 수 있었던 때는 행복한 시대였으며, 개혁정부가 들어서고 개혁을 믿을 수 없게 됐다며 정치가들이 이합집산과 흠집내기에 열중하는 걸 보면 선거철이 가까운 것 같은데 저들을 갈아치우고 새로 맞이하고 싶은 새 얼굴이 도대체 떠오르지 않으니 어떡하나라고 한탄하기도 했다.
칠십 년은 끔찍하게 긴 세월이라면서도, 박 씨는 내 나이에 6자가 들어 있을 때만 해도 촌철살인의 언어를 꿈꿨지만 요즈음 들어 어질고 따뜻하고 위안이 되는 글을 소망하게 되었다며 자신의 글이 독자들에게 위로와 따스함을 전해 주기를 소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