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페미니스트의 여성 편들기
지금은 여성과 남성의 차이를 말할지언정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다고 당당히 말할 수 없는 시대이다. 평등의 개념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여성과 남성이 평등해져야 한다는 데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언론과 누리꾼 사이에서 여성문제가 끊임없이 논의되면서 여성과 남성은 거의 평등해졌다 지겹다 오히려 남성이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여성과 남성의 평등이란 상식과 교양이 되었고 사회가 많이 변화한 지금, 여성주의에 대한 반격은 이미 시작되었다. 된장녀가 쉽게 골페미(극단적인 페미니스트를 비하하는 속어)와 동일시되듯이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말하기란 일종의 커밍아웃과 같은 용기가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겁도 없이 자신은 페미니스트이며 여성주의가 남자를 살린다고 주장하는 남자가 있으니 그가 바로 이 책의 저자다.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는 소수의 남성은 남성들뿐 아니라 여성들에게서도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다. 남성들의 반응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으니 생략하고, 여성들 특히 여성 페미니스트 중에는 남성 페미니스트라는 모순어법이 이미 그 모순을 말해 준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섹스와 젠더가 일치하는가? 곧 페미니스트는 여성만 될 수 있는가? 페미니스트가 되기 위해선 자격이 필요한가? 페미니스트의 진정성은 여성만이 겪을 수 있는 경험에서만 비롯되는가?라는 질문들을 제기한다.
성별화된 권력구조 안에서 수혜자인 남성이 그것을 편안하게 느끼는 것은 일면 당연하기 때문에 권력자인 남성들이 그러한 혜택의 부당함에 문제를 제기하기를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저자는 대한남성민국에서 억압의 가해자이며 공모자가 남성이라는 점에서 사실은 여성문제가 아니라 남성문제라고 단언한다. 저자는 남자로서 여자 편을 드는 게 아니라 여성주의가 근본적으로 정의롭기 때문에, 또한 수혜자로서의 나 자신을 인식하기 때문에 여성주의 편을 택한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이러한 태도와 정체성을 지니고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 권력의 남초현상, 남성 기 살리기, 사이버 마초, 성매매특별법, 군대 등 첨예한 문제들을 정면으로 다룬다.
여성 페미니스트가 이런 문제를 다룬다면 편파적이고 편협하며 피해의식이라는 등의 반격이 예상되는 데 비해 남성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저자의 진단은 편들기라는 단어를 노골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객관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머리로는 알겠고 동의하는데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뭔지 모를 거부감이 드는, 그리고 반복되는 성대결 양상에 안타까움을 느끼는 남자, 그리고 여자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우리의 사회현상과 문화에 대한 분석이므로 편하게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