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허니문 1번지, 경주
따분할 것이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경주를 떠나던 날, 네 커플 스스로도 의외라고 평가했으니.
빠듯한 일정, 뻔한 유적, 낯모르는 이와의 동행. 주최도 여행사가 아니라 유적답사 경험이 전부인 문화단체. 그래서 기대는커녕 오히려 걱정스러웠을 것이다. 노년에 신혼여행이라는 것도 좀 계면쩍고.
그러나 사흘 후. 여행을 마치고 경주역으로 가는 버스 안은 헤어짐이 아쉽기만 한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충남 당진에서 온 손풍운 이병열 씨 부부는 동행 커플에게 우리 집 황토 방이 좋으니 꼭 한번 내려오라고 당부했다. 다른 이들도 서로 청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사흘간의 여행. 그 반응은 놀라웠다. 첫날 경주역 도착 당시의 어색함. 그런 어정쩡한 분위기는 하루 저녁을 보내고 나니 오간 데 없이 사라졌다. 변화의 속도에도 가속도가 붙었다. 부부간에는 새 정이 돋은 듯했다. 팔짱을 끼거나 손을 잡는 모습이 점점 자연스러워졌다.
저 멀리 시간의 벽에 갇혀 까마득히 잊고 지냈던 빛바랜 신혼의 추억. 경주 허리문은 그것을 당시 모습대로 되살려 내기에 더없이 좋은 자극제였다.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 안. 기자는 이런 생각을 했다. 노년의 삶, 거기에 가장 필요한 것은 이런 삶의 청량제가 아닐까 하고. 이제는 자식이나 남이 아니라 나와 내 짝을 삶의 중심에 두고 꾸려가는 그런 삶을 위해.
사흘간의 외출이 뜻밖의 반응을 얻은 데는 비결이 있었다.
첫째는 열린 마음으로 동행한 참가자들의 적극적인 자세. 이만득(70) 정은선(66) 씨는 42년 전 경주 허니문처럼 매일 옷을 바꿔 입을 만큼 적극적이었다. 신혼여행을 걸러 33년 만의 허니문을 마련한 서울의 지종만(63) 윤호자(60) 씨 부부는 답사여행객 이상으로 진지하게 유적을 답사했다. 금혼(결혼 50주년)을 맞아 참가한 박영래(74) 정수화(71) 씨 부부는 자신들을 이 여행에 참가시키고 경비까지 낸 큰며느리 자랑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둘째는 진병길 원장과 신라문화원 자원봉사자의 노고다. 진 원장은 직접 일정을 진행하며 프로그램을 점검했고, 가이드를 맡은 자원봉사자 김혜경(신라문화원 문화유산해설사) 씨는 사흘 내내 안내하며 가족 같은 분위기로 이끌었다. 경주시니어클럽 여성 회원(60세 이상)들은 차 대접, 왕과 왕비 옷 야외촬영 보조 등 온갖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맡았다. 이들은 클럽이 운영하는 제과점의 서라벌 찰보리 빵까지 선물했다.
셋째는 관련 단체의 지원. 한국관광공사와 경북도는 시범여행의 경비 일부와 홍보를 지원했고 더 나은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직원까지 파견했다. 경북도관광협회 경주시지부와 경주 힐튼호텔은 식사를 대접했다.
추억의 경주신혼여행은 경주관광 활성화를 위해 신라문화원이 기획하고 경북도와 한국관광공사가 지원하는 프로그램. 1970년대 중반까지 허니문 1번지였던 경주를 시니어의 허리문 목적지로 다시 부각하려는 시도다.
진 원장은 이익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경주관광을 부흥하는 것이 목적이라며 경북도의 지원을 받아 참가비 이상으로 지출하기 때문에 여행사에 맡기지 않고 직접 운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