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으면서, 그가 사티의 짐노페디를 칠 때면 그 곁에 바짝 앉아 마치 자신의 귀에 기타 소리가 들리는 듯 행복에 겨운 미소를 짓다니, 사실은 그 미소가 한번만 그이 소리를 듣고 싶어하는 간절한 괴로움인 줄도 모르고서 손가락을 보고 있으면 소기가 들린 다는 그녀의 말을 단 한번 의심도 없이, 누구 앞에서보다 그녀 앞에서 손가락을 더욱 깊이 더욱 사삭거렸다니. 그럴수록 그녀의 두통이 더 깊어졌으련만. 편지를 든 채로 멍하니 앉아 있는 그에게로 점박이가 다가왔다. 그는 편지를 떨어뜨리고 점박이를 안았다. 그녀가 떠날 때 너는, 너는 어디 있었니. 그녀는 이삿짐을 실은 트럭을 기다리게 하고 흰순이를 품에 안은 채 애타게 점박이를 찾았다. 어딨니? 그녀는 점박이를 찾으려고 이미 열쇠를 채우고 나왔을 여기로 몇 번을 오르내렸고 트럭 위로 올라가 거꾸로 세워진 의자 사이, 탁자 사이 책 사이사이를 들여다보았고, 우편함까지를 열어 보았고, 어디 갔을까요? 방금 까지 있었는데 경비실을 서성였고, 딱 두 동밖에 없는 스튜디오 여기저기를 돌아다녔고, 스튜디오의 황폐한 겨울 뜰과 5층 꼭대기 옥상을 향해 어딨니?를 외쳐 대었다.
그는 점박이의 양 겨드랑에 손바닥을 집어넣고 그녀의 침대가 놓여 있던 자리에 길게 누웠다. 그는 그의 배 위에 점박이를 내려놓았다. 금세 점박이가 앉아 있는 자리에 따뜻한 기운이 퍼졌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자신의 배 위에 웅크리고 있는 점박이를 쳐다보았다. 너 그때 어디 있었어? 그의 목소리가 공허하게 그녀의 살림이 빠져나간 일곱 평의 실내를 떠돌았다. 흰순이를 품에 안고 애타게 점박이를 찾고 있던 그녀의 초췌한 모습이 떠올라 그는 지금 그이 배 위에서 가만히 앉아 있는 놈이 야속해졌다. 어떻게 들어왔을까? 현관문도 창문도 다 닫혀 있었는데 그는 망치 소릴 이제 혼자 들으며 자신의 손가락을 쳐다봤다. 그녀가 끼워 준 반지. 정말 아무것도 세상의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고 느껴지던 날 금은방에 가서 사서 낀 거예요. 귓속의 깜깜한 칠혹을 이 반지가 위로해 줄 거라고 혼자 최면을 걸었죠. 그러고 나니 정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때 이 반지를 만지고 있으면 불안하지 않아요. 그는 말했었다. 앞으론 어쩔려고? 이젠 괜찮아요.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살 수 있어요. 무슨 힘으로? 그녀는 썼다. 그쪽이 내 곁에 있는 힘으로.
언제부턴가 자주 그녀의 눈에 눈물이 어렸다. 그랬다. 그는 알고 있었다. 그 눈물의 어림이 그치면 그녀가 가리란 것을. 그는 그녀가 풍기는 이별의 냄새 앞에 무얼 해야 할지를 몰랐다. 그는 알고 있었다. 그녀가 간 후로, 그저 담배를 피우고, 얼마간 걸어다니다가 돌아와 기타를 치던 손톱을 깎고, 한 계절이거나 두 계절 창 가까이에 앉아 있으리란 걸. 저것 봐라. 여기도 거미가 있지 않은가, 창문 위. 물방울무늬의 거미가 스륵, 제가 짜 놓은 거미줄을 타고 기어 내려오고 있다. 나무나 수풀, 돌 밑이 나 풀속, 바닷가나 사막, 물 속이거나 꽃 위가 아니라 저 거미는 왜 여기에서 기어다니는 건지. 그러다가 어느 날 이제 더 이상 앉아 있지 말자. 무슨 일인가 하자, 마음먹으며 다시 기타를 메고 학원에 나가면 그때도 사람들은 그를 향해 기타 소리가 더 좋아졌네. 그로서는 알 수 없는 말을 할 것이었다. 그는 점박이 머리를 쓰다듬던 팔을 아무렇게나 떨어뜨려 버렸다. 그의 팔은 그에게서 버림받고 바닥에 축 처졌다. 그이 눈에 흰순이를 품에 안고 이놈을 못 찾아 허둥거리던 그녀의 모습이 어려졌다. 찾다가 찾다가 다시 한 번 이미 열쇠를 채운 이 텅 빈 공간에 올라갔다 내려온 그녀는 체념한 듯 고갤 수그리며 인부들에게 품삯을 계산하는 것 같았고, 그리고는 다시 한 번 3층, 그들이 자주 창가의 의자에 앉아 바깥을 내다보고 하던 그 창을 잠시 바라보더니 트럭에 올라탔었다. 그녀는 그 트럭 기사와 함께 오늘 종일 고속도로를 달렸을 것이다. 그녀가 이 도시를 아예 떠나겠다고 그에게 말한 바도 없는데 그이 생각은 그녀의 이삿짐을 실은 트럭은 이 도시의 톨게이트를 지나 온종일 고속도로를 달렸을 거라는 생각이다. 언젠가는요. 내가 떠나온 곳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요. 그녀가 떠나온 곳이 어디인지 그는 모른다. 거기가 어딘데? 라고 그는 묻지 않았다. 단지 그곳이 아주 먼 곳일 거라는 생각, 여기 바깥일 거라는 생각, 그는 거기까지만 생각했다. 그녀가 그녀의 살림들을 싣고 고속도로로 나갔든 아니든 트럭기 옆에 앉은, 어딘 가로 옮겨가는 그녀 곁엔 그가 아니라 한 마리의 고양이가 있어 줬다. 품속에 그 고양이만이 따뜻한 체온으로 안겨 있었다. 어쩌면 지금쯤 그녀와 고양이 한 마리는 종일 고속도로를 달려. 지금쯤 그녀가 떠나와 한번도 가본 적이 없다는 그녀의 그곳에 닿아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낮에 함께 갔으면 너도 그랬을 텐데 너는 왜 여기 이 빈집에 홀로 있니? 그는 누운 채로 자신의 버려져 있는 듯한 팔을 모아 배 위의 고양이를 안았다. 고양이의 부드러운 등털 속에서 그녀의 손길이 느껴졌다. 그랬을 거라고, 그녀도 이렇게 어느 순간 순간을 이 부드러운 등털 속에 손을 묻으며 밤과 낮을 보냈을 거라고 생각하니, 그는 얌전하게 점방이의 등을 만지고 있을 수가 없어졌다. 그의 손길에 힘이 들어가고 어지러워지니 천년이라도 그의 배위나 손바닥 위에 웅크리고 앉아 있을 것 같던 점박이는 그를 차내고 가볍게 창틀을 딛고 이젠 비어 있을 벽의 선반 위에 가 사뿐히 앉았다. 그가 그의 배 위를 떠나 버린 고양이를 누운 채 우두커니 올려다보고 있는데 포포롱 포포롱― 새 우는 소리가 들렸다. 새 소린 망치 소리에 섞여 그리고 거위 소리에 섞여 있어 생쥐 소리에 섞여 있어 그는 포포롱, 포포롱, 소리가 초인종 소리라는 걸 한참 뒤에야 알았다. 이 집에 초인종이 있었나? 그는 벌떡 일어섰다. 포포롱 포포롱 소리가 잠시 멎어 그는 잘못 들었나, 하는데 다시 포포롱 포포롱, 거린다. 혹시 그녀가? 그는 성큼성큼 현관 쪽으로 가 문을 땄다. 문 밖에 한 남자가 흰 마스크를 입에서 턱으로 밀어 내리고 있다. 누구세요? 관리실 직원이에요. 그런데? 소독 좀 하려구요? 그러고 보니 남자의 다른 손엔 분무기가 들려 있다. 그는 어이가 없어 분무기를 든 남자를 빤히 쳐다봤다. 밖에 아직도 눈이 내리는가? 남자의 어깨에 머리에 눈이 소복하다. 허연 남자는 그의 시선을 떨쳐 내고 그를 밀치고선 안으로 한 발 들어섰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그가 아아니, 하며 막은 손바닥이 남자의 가슴을 친 격이 되어 버렸다. 그의 제지에 남자가 멈칫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