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면 되는데요.
밤 열 시에 무슨 소득을 하겠다는 거요.
다른 집은 낮에 다 했는데 문이 잠겨서..... 경비원이 지금 문이 열렸다 길래..... 댁이 가면 또 잠길 것 같으니까.
소독 한번 안했다고 무슨 일 나오? 유령같이 한밤에 무슨 소독을 하겠다는 거요?
그는 말하고 나니 섬뜩해졌다. 정말 분무기를 들고 서 있는 남자가, 눈을 흰 모자처럼 쓰고 있는 남자가, 유령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유령 같은 남자를 밀어내고 문을 닫아 버렸다. 문이 닫힌 후에도 소독하는 걸 포기하지 못한 유령 같은 남자는 초인종을 다시 눌렀다. 포포롱 포포롱― 새우는 소리. 그녀는 듣지도 못하면서 초인종을 왜 달아 놨을까? 이 집에 들어올 때 그는 언제나 그녀가 어느 날 손바닥에 얹어 준 열쇠로 직접 따고 들어왔다. 관리인이 초인종을 누르기 전엔 이 집에 초인종이 달려 있었는지조차 그는 알지 못했다. 안에서 그가 대답이 없자, 밖에서 유령 같은 남자가 문을 주먹으로 쿵쿵 두드린다. 문 두드리는 쿵쿵, 소리는 쾅쾅거리는 망치 소리에 비하면 소리도 아니다. 유령 같은 남자는 그걸 알았는지 분무기를 들어 철제 현관문을 부술 듯 두드렸다. 발끈한 그는 안에서 따는 보조키를 따고 문 을 와락 밀쳤다. 그 바람에 유령 같은 남자는 소독 분무기를 든 채로 반은 넘어져 있다. 이 방은 소독할 거 없소! 문 두드리는 양으로 봐서는 지금 어떻게든 소독을 하고 갈 기세더니 유령 같은 남자는 몸을 일으키며 턱에 내려가 있는 마스크로 다시 입을 가리고는 힘없이 계단을 내려갔다. 현관문의 보조키를 잠그고 그는 방으로 성큼 걸어 들어와 방 가운에 망치 소리와 거위 소리와 생쥐 소리 속에 오래 서 있었다.
한 시간이나 지난 후에 그는 그 자리에 스스륵 무너져 누웠다. 점박이가 요기롭게 가르릉, 거리며 선반 위에서 내려와 그의 이마 위에 몸을 오그리고 앉았다. 이마가 점박이의 발톱에 패인 듯 아파 왔다. 하지만 그이 팔은 방바닥에 버려져 있을 뿐 힘을 내어 이마에 앉아 있는 점박이를 들어올릴 줄을 몰랐다. 그가 겨우 점박이를 향해 혼잣말로 너, 저 편지를 내게 읽게 해주려 남아 있었구나, 하는데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던 점박이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부드러운 털 속에 숨기고 있던 발톱을 카르릉, 세우더니, 마치 금방 잡은 살코기를 팽개치듯 힘껏 그의 이마를 찼다. 아악, 그가 비명을 지르는 사이 고양이는 날듯이 창틀을 한번 딛고는 다시 선반 위로 옮겨가 앉았다. 점박이 발톱에 할퀴어진 그이 이마는 짝― 금이 가더니 금세 핏물이 그이 눈으로 흘러들었다. 그는 팔을 들어 팔 소매로 핏물을 닦았다. 자꾸만 핏물이 눈으로 들어가 그가 몸을 일으켜 고개를 숙이자 핏물이 방바닥에 투둑, 떨어졌다. 그는 얼굴을 천정을 향해 들고서 웃옷을 벗었다. 어깨선에서 소매가 붙어 있는 곳을 찢어 이마를 감싸서 뒤로 묶었다. 그렇게 그는 누워서 벽의 선반 위에 올라가 새파란 눈을 빛내고 있는 고양이를 올려다보았다. 너는, 너는 내 두 마음을 보았지? 붙잡고 싶으나 보내고도 싶은 내 두 마음을. 너는 알고 있지 마침내는 보내고 싶은 내 마음이 이기는 걸. 그른 방바닥에 팔을 버렸다. 점박이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의 두통을, 점박이는 보았을 것이다. 그녀가 밤에 자다가 일어나 기어서 세면장으로 기어가 찬물에 머리를 담그는 것, 머플러로 침대와 그녀의 머리를 꽁꽁 묶는 것을. 점박이는 느꼈을 것이다. 그녀가 한번만 그의 손가락이 내는 소리를 듣고 싶어한 것, 그녀 깜깜한 귓속 칠혹의 외로움을. 그래서 너 지금 내게 이러는 거다. 그럴 게다. 그녀. 여기에 앉아 책을 읽을 때도 그토록 머리가 아팠었을까? 그 아름다운 색색의 꽃들을 만들 때도? 그녀의 손끝은 마술에나 결린 듯 색색의 종이 위에서 섬세하고 빠르게 움직여 금세 꽃을 만들어 놨다. 장미, 안개, 아이리스, 백합, 그녀가 조용히 앉아 만든 꽃은 그녀 이모가 하는 서점을 겸한 장식품 가게에 진열되어 팔려 나가곤 했다. 책을 사러 온 손님들이 책을 구경하다 말고 그녀가 만든 꽃에 시선을 주면, 서점에서 책방 점원으로 서 있는 그녀를 두고도 그녀 이모는 말했다. 아름답죠, 귀머거리가 만든 꽃이랍니다. 그는 그녀에게 말해 주고 싶었다. 기타는 마음에다 대고 환하게 말하는 진짜 노래야. 아무리 퍼내어도 마르지 않는 샘과 같은 거지. 라고 하지만 그가 한번 해야 할 말은 그 말이 아니었다는 걸 그는 느꼈다. 그가 했어야 할 말은 그녀가 꽃을 만들 때 나는 사삭사삭 소리에 대해서였다. 그 소리들이 얼마나 아늑한가에 대해 말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