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1994 <인생>
부유한 지주의 아들인 푸구이(갈우 분)는 도박에 빠져 전 재산을 탕진한다. 아버지는 충격으로 세상을 떠나고 부인 자전(공리 분)마저 딸을 데리고 가출한다. 한 순간에 인생을 끝을 맛본 그는 최후의 수단으로 그림자극을 배워 생계를 꾸려나간다. 하지만 행복을 배워가던 그에게 세상의 격랑이 휘몰아친다. 국공내전과 공산혁명, 그리고 문화대혁명까지, 잇따른 정치적 소용돌이에 그의 삶 또한 휘청거리고 사랑하는 아들과 딸마저 잃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나는 것을 피눈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홀로 남은 노인 푸구이는 누구든 붙잡고 책임을 묻고 분풀이를 하고 싶지만 그 대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있다면 오직 운명뿐일까. 모진 시련에도 불구하고, 그의 인생을 그렇게 계속 흘러간다.
중국작가 위화의 원작<活着-살아간다는 것)으로 탄생한 장예모 감독의 영화 <인생>은 위화의 원작에 비해 사회적인 관점으로 한발 더 다가선다. 인간이란 운명의 파도 앞에 순응하는 존재라는 점에서는 일맥상통하지만 장예모 감독은 그러한 운명을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정치적, 사회적 역학관계에서 바라본다.
화자를 통해 푸구이의 개인사를 전하는 작가 위화와는 달리, 감독 장예모는 1940년대, 1950년대, 1960년대 등 분절된 시간 프레임의 틀 속에 각각 국공내전, 공산혁명, 문화대혁명을 상징하는 중국현대사의 흐름에 인물과 사건들을 접목시킨다. 이는 즉 푸구이의 시련이 사회적 틀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강하게 암시하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위화가 독자들의 눈물을 왈칵 쏟게 했던 공감키워드 ‘가난’이 영화에서는 사회주의, 정치와 같은 푸구이가 공감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외적 요인으로 그 자리를 대신한다.
결국 장예모 감독이 <인생>에서 그려내는 주인공들의 삶의 현장은 바로 인류가 역사 속에서 공통적으로 경험했던 보편적인 고난의 기억일 것이다. 특히 6.25전쟁과 그 이후 우리 사회를 지배했던 이념적 갈등을 떠올리면 한국인들에게 그 공감의 폭은 더욱 크게 다가온다. 대한민국의 근 현대사가 푸구이 노인의 가족사 안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는 것처럼 어느 한 민족을 넘어서 같은 감성을 가진 ‘인간’으로써 역사의 한 부분에 녹아 든 아픔을 공유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인생>에서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가치가 아닐까.
쓸쓸한 저녁 나부끼던 혼자만의 노랫소리로 사라져 간 고독한 위화의 푸구이. 그리고 살아남은 부인과 손주와의 화목하게 식사하는 장예모의 푸구이. 장예모 감독의 <인생> 속에는 아직도 희망이 존재한다. 그는 이로써 중국이라는 공동체의 희망을, 그리고 우리네 인생의 그늘에 흐드러진 희망을 두드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