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 엎어질듯 기우뚱거리다 칠 팔 척이나 뒤로 밀려가고 말았다. 이 순
간, 동작이 예민한 하림은 있는 힘을 다하여 선수(船首)를 돌리면서 노를
힘껏 저었다. 이와 함께 배는
<쉬익!>
물을 가르며 앞으로 미끄러져 나갔다. 그러자 양몽환의 강한 장풍으로
뒤로 밀려갔던 정체불명의 쾌속정에서는
「으하하하……」
듣기에도 소름이 끼치는 괴한들의 냉소 소리가 들려왔다 하림은 위급한
시각을 모면하고 달리다 괴한들의 웃음소리를 듣는 순간 그들과 일전을
불사할 결심을 했다.
힘껏 노를 젓던 손을 멈추고 배를 돌리려 하자 양몽환이 하림의 결심을
막았다.
「심소저 배를 돌리지 마시오. 놈들의 배가 훨씬 빠르고 수도 많은 것
같소. 그냥 갑시다.」
하림은 입술을 깨물며
「가만히 지나오는 우리를 범하려는 비겁한 행동은 참을 수가 없어요!」
사실 하림의 말이 옳았다. 그러나 무례하다고는 하지만 참을 수 있을
때까지는 참는 것이 무술인 이라고 양몽환은 스스로를 억제하며
「심소저! 당연한 말이오. 그러나 사부님의 말씀에도 무술계에는 기괴한
일이 수없이 많다고 하오. 그만한 일에 신경을 쓰는 것은 무익한 일이니
우리 가는 길이나 재촉하는 것이 좋을 것 같소」
하자 하림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러시다면…… 그렇게 하겠어요.」
하고 지금까지 노했던 얼굴에 밝은 웃음을 띠우며,
「그런데 저 청이 하나 있어요.」
부끄러운 듯이 말했다.
「무슨?」
하며 하림을 보았다. 그러자
「이제부터 양사형을 오빠라고 부르겠어요? 그래도 화내시진 않겠죠?」
하는 말에 양몽환은 어처구니없는 듯 웃었다.
그것은 좋다던 가 나쁘다던 가의 뜻도 아닌 웃음이지만 오빠로 부르겠
다는 것을 마다할 수도 없었다.
양몽환은 대답대신 하림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혼자 생각했다.
(심소저는 나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더구나 모든 일에 순종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미 나에게는 사랑하는 여자가 있지 않는가? 공연한 일로 심소저
의 마음에 상처를 입힌다면…… 안된다. 안된다.)
이렇게 생각한 양몽환의 마음은 산란하기만 했다. 그러나 하림은
「그럼, 오빠라고 부르겠어요.」
하는 데는 양몽환도 가볍게 따라 웃고 말았다.
「오빠! 배를 어느 쪽으로 몰까요?」
새까만 눈동자를 반짝이며 묻는 하림을 바라보며
「동쪽으로! 이처럼 순풍이면 내일 오전 중으로 집까지 도착 할 수 있겠
지.」
하림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돛을 높이 달고 뱃머리를 동쪽으로 돌린
후 마주 앉았다. 순풍을 안은 돛은 잔잔한 호수를 백조처럼 가볍게 떠서
흘러가고 있었다.
「오빠! 가족이 몇 분이세요? 어머님도 계시죠? 제가 함께 집에 가면 어
머님께서 좋아하실까요? 저는 버릇없이 자라서 걱정이 되는군요.」
미처 대답할 사이도 없이 묻는 하림을 바라보며 적이 놀랐다.
그러나 담담한 어조로 웃으며
「하, 하, 하… 걱정할 것 없소, 내 어머님은 틀림없이 좋아 하실걸!」
하림은 기쁜 듯
「정말? 좋아라! 제가 어머님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어요. 얌전히 말도
잘 듣고 할게요.」
말하고 하림은 뱃전에 엎드려 물장난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그의 얼
굴은 행복과 천진한 얼굴 그것이었다. 어느 듯 밤도 깊었다. 동정호 호수
의 길이만도 삼백 리 달빛이 반사되어 거울같이 맑은 물 무수한 별이 총
총히 뿌려져 박힌 하늘은 맑은 호수와 맞닿은 듯 끝없이 넓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