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그렇습니다.」
「하, 하, 그러시군. 자 그럼 변변치 못한 음식이지만 많이 드시오, 우선
술을 마셔야겠군.」
하는 말이 떨어지자 하림이 말을 받으며
「그러나 미안한 말씀이지만 오빠와 저는 마시지 못하오니 속히 말씀을
끝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희들은 갈 길이 멀고 또 바쁩니다.」
하고 말했다.
그러자 노인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좋소이다! 바른 말을 잘하는 소저는 과연 여장부답소. 그런데 어디까
지 가시는지 모르겠소마는 우리 배로 모셔다 드려도 좋다면 기꺼이 응하
겠소. 천천히 이야기나 하면서 함께 가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니오. 하
하……」
악의라고는 추호도 없는 노인의 얼굴을 바라보며 양몽환은 약간 의심하
며,
「악양(岳陽)까지 가는 결입니다마는 어찌 선배님께 폐를 끼칠 수 있겠
습니까?」
하고 사양하자 노인은 고개를 흔들며
「별 말씀을…… 순풍에 돛을 달면 아무 걱정도 할 것이 못되오. 더구나
폐는 무슨 폐가 되겠소.」
말을 마치자 부하를 불렀다.
「뱃머리를 악양으로 돌려라!」
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배는 기우뚱 기우뚱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 양몽환과 하림은
노인이 권하는 술잔을 사양하고 다과(茶果) 만을 들자 더 권유하지 않고
자작으로 술을 따러 마셨다. 그렇게 해서 마시는 술은 한이 없었다.
「한잔, 두잔……」
자작으로 마시는 술이 어언 백여 잔!
그러나 취한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는 동안 노인은 계속 술잔만 비울
뿐 긴요하다는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기다리다 못한 양몽환은
「노선배님께서는 급히 긴요한 말씀이 있으시다고, 하셨는데 어떠한 말
씀인지 듣고자 하옵니다.」
하는 말에 노인은 그제야, 들었던 잔을 탁자에 놓으며
「그렇소. 내가 이제부터 하는 이야기를 명심해 들었다가 행하시오. 그
것은 다름이 아니라」
여기서 일단 말을 끊은 노인은 다시 빈 잔에 술을 따라 훌쩍 마시며 다
음과 같이 말했다.
「한 이십년 전에 나는 어떤 사지(死地)에서 귀형의 스승님의 도움을 받
아 위기를 모면 했소. 그것이 항상 내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아 언제든지
그 은혜를 보답하려 하였소, 그런데 지금 귀형 두 분을 더구나 은인의 제
자인 두 분을 만난 것이오, 그것은 마치 바로 은인을 만난 것처럼 기쁘
오.」
「………」
양몽환과 하림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이제부터요, 요사이 풍문에 듣자니 귀형
의 스승이자 나의 은인인 그분이 무술계의 보물인 장진도를 입수하였다는
소문이오. 그리고 그분은 장진도를 가지고 비급을 얻기 위하여 길을 떠났
다는 소식이 있소, 그런데, 사실, 우리 무술계에서는 백년 이래 그 장진도
때문에 얼마나 많은 고수들이 비명횡사 했소? 그런즉 큰 풍파 없는 무술
계에는 이제부터 그 장진도를 빼앗기 위하여 일대 혈전이 예상되오, 사실
은 이 늙은이도 장진도를 빼앗기 위하여 나선 길이오. 그런즉 나는 은혜
를 갚자는 것이 도리어 원수가 되어 싸우게끔 되었으니 세상사 모를 일이
오. 당신들은 속히 종적을 감추는 것이 현명할 것 같소, 무술계의 고수들
은 지금 현도관의 곤륜파 무술인들을 찾아 헤매고 있소. 내가 할 이야기
는 이것뿐이오. 이것이 은혜를 갚는 건지 어쩐지는 모르겠소.」
말을 마치는 노인의 얼굴에는 비장한 각오와 추연한 빛이 감돌았고 이
야기를 듣는 양몽환은 적이 놀라며 사부님과 헤어지기 전의 일을 순간적
으로 더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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