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어지게 가난한 삶을 살기가 지긋지긋하게 싫어서 한참 동안 양심이라는 것을 나는 버렸다. 불쌍히 나에게 버림받은 양심은 어두운 구석에서 슬프게 흐느꼈는데 나는 내 눈을 감고 내 귀를 막고 그에게 시선을 돌려 주지 않았다.
중학교 3학년때 일이었다. 여름방학이 시작되자 나는 집안의 밀가루 장사때문에 바빠졌다. 우리 집의 희망은 하얀 밀가루에 달려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나와 동생의 만만치 않은 학비,어머니의 심장병 치료비,그리고 매일매일의 생활비를 다 밀가루를 팔아서 버는 돈으로 해결해야 했다. 그 해 여름의 장사가 유난히 잘 안됐다. 동네에서 아주 큰 슈퍼가 생겨서 그랬을까? 나도 잘 몰랐다. 하지만 나는 하나의 사실을 잘 알았다. 우리 집의 형편은 날로 더욱 나빠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팔리지 않은 밀가루로 가득 찬 창고를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걱정어린 눈빛, 하루하루 비어가는 어머니의 약병,그리고 거의 매일 새벽까지 책상 옆에 처박혀 공부에만 몰두하는 동생의 야윈 모습은 내 가슴을 찌르고 있었다.
창고에 쌓인 밀가루에 곰팡이 슬기시작했을 때 나는 가족을 도와 주는 방법 하나를 찾아냈다. 화학을 배운 나는 상한 밀가루에 어떤 화학물질을 섞으면 원래보다 훨씬 하얘 보이고 맛있다는 시실을 알게 되었다. 그 방법으로 창고에 쌓인 밀가루를 슈퍼보다 많이 싼 가격으로 동네 사람들에게 팔면 우리도 돈을 벌 수 있겠다. 아버지께 말씀을 드리려던 참에 어머니의 심장병이 갑자기 악화되어 부모님은 가까운 도시에 병 보러 가셨다. 친척들의 따가운 눈총에서비겁하게 치료비 빌리신 아버지의 모습에 나는 이를 악물고 눈물을 삼켰다. 솔직히 그 전에 나뿐 짓을 하려는 마음에 너무나도 불안했으나 이제 단단하게 마음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