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이 보이고 색이 들린다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는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주제로 가로 30m짜리 대형 벽화를 남겼다. 작곡가 윤이상은 강서대묘의 청룡 백호 현무 주작을 그린 사신도를 거실에 걸어놓고 평생 자신이 창작하는 음악의 근본으로 삼았다. 음악은 영혼의 데생이라고 했던가. 갤러리에서 열리는 실내음악회는 이미 세계적인 추세다. 음악이 보이고, 미술이 들리는 갤러리 음악회 현장을 찾았다.
비 내리는 북한강변의 음악회
비가 쏟아지던 토요일인 15일 오후. 경기 남양주시 북한강변에 있는 서호미술관을 찾았다. 이 미술관에서 4년째 계속되고 있는 화음프로젝트 음악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전시장에 들어서자 우선 전면의 격자무늬 유리창 밖으로 북한강변의 풍광이 한 눈에 들어왔다. 100여 명의 관객들이 의자에 앉자 음악회가 시작됐다. 강바람에 흔들리는 나무가지와 미술작품을 배경으로 연주되는 베토벤의 피아노, 클라리넷, 첼로를 위한 3중주곡은 가슴 속에 쉽게 지워지지 않을 이미지를 새겨놓았다. 2002년부터 1년에 10여 차례 열리는 화음프로젝트 음악회는 전시에 초대된 화가의 작품을 주제로 작곡된 현대음악을 초연하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이날 음악회에선 화가 정충일 씨와 작곡가 황동옥 씨가 각기 그림과 음악에 대해 해설했다.
지옥의 문 앞에서 칼레의 시민과 함께
11일 로댕의 조각 지옥의 문과 칼레의 시민이 전시되고 있는 서울 중구 태평로 로댕갤러리 글래스 파빌리온에서도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공연기획사 크레디아의 클럽발코니 회원 200여 명을 대상으로 첼리스트 피터 비스펠베이가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과 6번을 연주했다. 단테의 신곡을 주제로 한 지옥의 문 앞에서 비스펠베이 씨가 연주하는 바흐는 최후의 심판을 담은 조각과 어우러지면서 관객들을 깊은 사색으로 이끌었다. 첼로의 풍성한 울림이 미술관 벽면에 반사되면서 마치 천상의 분위기 같은 느낌을 연출했다.
비스펠베이 씨는 연주가 끝난 후 내 생애 최고의 연주 중의 하나였다. 지옥의 문 앞에서 연주하는 사진을 기념으로 갖고 싶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관객의 진지함과 집중력이 어떤 연주홀에서보다 피부로 다가왔다고 소감을 말했다.
음과 색, 그리고 와인
과천현대미술관에서는 한국페스티벌앙상블이 20일부터 피아노와 함께하는 앙상블연주회를 연다.
바로크, 로코코 시대까지만 해도 음악과 미술이 굉장히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어요. 실내악이란 원래 그림이 걸린 곳에서 지인들끼리 함께 즐기기 위한 음악이죠. (화가 정충일 씨)
작은 미술관 음악회에서는 때로 와인이나 간단한 다과를 마련하기도 한다. 관객들은 맘에 드는 좌석에 앉아 음악을 즐기고, 연주회가 끝난 뒤 그림을 보며 함께 담소를 나눈다. 한 관객은 중세 궁정의 실내악 음악회에 와 있는 기분이라며 즐거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