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나 은행원이나 상품 이해에 골머리
회사원 조모(33여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씨는 최근 적립식 펀드에 가입하기 위해 은행을 찾았다가 답답함을 느꼈다.
은행 창구 직원이 한 가지 상품만 집중적으로 소개해 줬기 때문이다. 다른 상품에 대해서도 설명해 달라고 했지만 직원은 이 상품이 좋다며 막무가내였다.
조 씨가 한 운용사의 펀드 이름을 구체적으로 대며 설명을 요구하자 직원은 상품 내용을 잘 모르겠다며 꼬리를 내렸다.
은행 직원이 금융 신상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판매에 나선 결과다.
서울 여의도의 한 시중은행 창구 직원은 모든 신상품을 완벽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 순으로 2, 3가지만 고객에게 소개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신상품이 나올 때마다 직원들에게 판매 할당이 떨어져 실적 채우기에 급급한 것도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물론 은행원들도 하루가 멀다 하고 발매되는 금융상품을 공부하느라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한다.
하나은행의 경우 신입 행원 때부터 2년 동안 기본 상품교육, 보수교육, 집합연수 등을 통해 100여 가지 금융상품을 배운다. 간부가 돼서도 상품 교육은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
하나은행 인력개발실 권순박 과장은 기존 상품은 안 없어지고 새로운 상품은 추가되고 있다며 그래서 직원들이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는다고 했다.
과거에는 금융상품이 은행 위주로 만들어졌다.
신한은행 최재열 상품개발실장은 예전에는 금융상품 하나 내놓고 가입하려면 하고, 하기 싫으면 말라는 식이었다. 고객을 유인하고 싶으면 금리를 조금 올려주는 것이 고작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고객 맞춤형 상품이 대세다. 시판 한 달 만에 7500억 원을 끌어 모은 국민은행의 명품여성통장이 대표적 사례다.
상품 개발 경쟁도 치열해졌다.
올해 상반기 은행권을 휩쓴 급여이체 통장의 경우 직장인 플랜 저축예금, 부자되는 월급 통장, 씨티원 직장인 통장 등 유사한 상품이 올해만 10여 가지가 잇달아 쏟아졌다.
인기를 끄는 테마가 있으면 모든 은행에서 관련 상품을 만들어 내는 식이다. 일본과의 독도 분쟁이 생기면 독도 관련 예금상품, 사회공헌이 이슈가 되면 사회공헌 대출 상품이 연이어 나온다.
은행의 신상품이 나온 뒤 경쟁 은행이 유사상품을 개발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12주에 불과할 정도로 짧아졌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들끼리 상품 구조를 베끼는 것은 항상 있는 일이고 서로 뭐라고 하지도 않는 분위기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