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따윈 필요없어는 어떻게 출연하게 된 거죠?
수능 끝나고 서울에 올라오자마자 회사에서 일본 원작 드라마 CD를 봤는데 이상하게 끌리더라고요. 그때 내 모습과 여주인공 류민의 캐릭터가 너무 닮아서 그랬나 봐요.
근영 씨는 밝고 맑은 사람인데 우울한 류민과 닮았다고요?
세상에 대한 불신이요. 그때 제가 딱 그랬거든요. 전 항상 제가 열심히 하기만 하면 그에 걸맞는 보상을 받아왔어요. 그런데 이번에 수능 준비하고 대학 갈 때는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했고 최선을 다했는데도 그 보상이 안 오니까, 더 이상 뭔가를 해야겠다는 의미가 없어지는 거예요. 내 안의 응어리를 민이를 통해서 표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번 영화에 대한 평가가 배우로서 중요한 것 같은데.
저는 그게 은근히 기다려지기도 해요. 비난이든 비판이든 충고든 다 수용할래요. 그게 이십대이기 때문에 할 수 있고 이십대이기 때문에 해야 하는 일인 거 같아요. 이 악 물고 또 한 계단 올라서는 그런 기회가 될 수 있겠죠.
지금 본인이 느끼는 배우 문근영의 약점은 뭐죠?
많죠. 정말 기본적인 발성, 호흡, 목소리 톤, 표정, 행동의 한계, 또 캐릭터를 해석하거나 감정을 표현할 때 난 왜 이것밖에 생각하지 못했을까 하면서 느끼는 한계. 지금은 모든 게 한계죠.
소위 말하는 그 지루하고 약간 딱딱하고 작품성 있는 영화에 출연하고 싶은 욕망이 문근영에겐 없을까요?
솔직히 욕심은 되게 많았죠. 그러나 한편으로는 생각해보니까 지금 내 나이, 내 모습으로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걸 보여주는 게 맞는 방법이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굳이 나를 빨리 소모하고 싶진 않아요. 천천히 가고 싶어요.
지난해 배우라는 직업이 다른 모든 게 될 수 있지만 정작 나 자신이 될 수 없다고 했잖아요. 난 그 얘기가 왠지 슬프게 들렸어요.
현실의 내가 싫으니까 환상속의 내가 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제가 연기하는 캐릭터의 어떤 모습이 나에게도 있었으면 좋겠고, 그래서 자꾸 내 자신에게서 찾아내려 하지만 나에겐 그런 모습이 없고. 그러니까 자꾸 내가 없다는 느낌을 갖는 거예요.
대학 가선 어떤 책을 읽었나요?
예전엔 소설 많이 보다가 요즘엔 대학 갔다고 인문학 책들도 좀 읽어요. 가장 오랫동안 붙잡고 있던 책은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그리고 체 게바라 평전.
혹시 역할 모델로 삼는 배우가 있나요?
전엔 없었거든요 솔직히. 그냥 장동건 오빠처럼 꾸준히 가고 싶다는 생각만 했는데, 최근에 라디오 스타 시사회 갔다가요 안성기 선배님 같은 배우가 되고 싶어졌어요. 그분을 보면서 나도 빨리 늙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