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페라 안에만 머물순 없죠
5년 전 그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였다. 쟤, 스무 살 맞아? 쟤, 진짜 자기 목소리 맞아?
20세에 데뷔한 미국 출신 팝페라 가수 조시 그로번(25). 프로듀서 데이비드 포스터에게 발탁된 그는 스무 살 답지 않은 성숙한 목소리로 데뷔하자마자 주목을 받았다. 한국에서도 투 웨어 유 아 유 레이즈 미 업 등 히트곡이 CF 음악으로 사용될 정도였다. 하지만 때로는 너무 성숙해 애늙은이 취급도 받았을 터. e메일 인터뷰는 그의 선천적 성숙함에 대한 얘기부터 시작됐다.
워낙 목소리가 굵고 어른스러워 다들 절 20대로 보지 않았죠. 그래서 그런지 다양한 연령층의 사랑을 받았어요. 그래도 무대에서 정장보다 청바지를 아직 즐겨 입습니다.
그는 자신의 목소리에 대해 선천적인 축복이라고 말했다. 미묘한 떨림 하나도 정확히 표현하는 목소리는 그를 팝페라 스타로 만든 1등 공신.
데뷔 앨범을 발표하고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지만 모든 게 한순간에 없어질까 봐 무서웠죠. 스스로 진실된 목소리를 내야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어요. 5년간의 성장통이라고 할까요?
성장 징표는 이번 3집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3년 만에 발표한 어웨이크는 세계적으로 1300만여 장이 팔린 1, 2집과 다른 노선을 취했기 때문. 음악이든 삶이든 늘 깨어 있기 바란다는 뜻으로 지은 앨범 제목처럼 슬프고 여린 감성 팝페라를 뒤로한 채 월드뮤직이나 퓨전재즈 등 다양한 장르를 섭렵했다. 재즈 아티스트 허비 핸콕과 함께 한 머신, 마치 그랜드 캐니언을 보는 듯한 장엄한 분위기의 마이, 긍정적인 인생관을 노래한 타이틀곡 유 아 러브드-돈트 기브 업 등은 이젠 포스터의 도움 없이도 자립할 수 있음을 나타내는 듯하다.
포스터는 든든한 후원자죠. 이번 앨범부터 나를 주인공으로 대우해 주더군요. 늘 긍정적으로 살자는 삶의 철학을 앨범에 담았습니다.
3집은 25일자 빌보드 앨범 차트 2위에 올랐다. 안드레아 보첼리, 세라 브라이트먼 등 팝페라 선배들만큼 유명해졌다고 하자 그는 팝페라는 미디어가 만든 허울일 뿐 내 음악을 팝페라에 한정시킨 적은 없다고 말했다. 20대 답지 않은 진지함을 보여 주던 그는 인터뷰를 자랑 한마디로 끝맺었다.
여성들이 내 목소리를 좋아한대요. 하하. 그것만큼 행복한 것도 없는 것 같아요.
喬希·葛班洛在洛杉矶出生,父亲是犹太人(俄罗斯人移民及拥有波兰血统),而母亲则是挪威裔的美国人。他的父亲在婚后改变信仰,成为一基督教徒。格羅本的弟弟.基斯杜化,与他同一天生日,但则较他年轻四年。[1]
格羅本以歌手身份首次登台,是他七年级的时候,但是他很快便把它搁下了数年。他亦表示:“我很享受艺人的外观,可是我的水平正在下降。我并不感觉到我有足够的灵感,所以我去了 Bridges Academy 以提升我的水平至 A。”当格羅本在Bridges Academy 的时候,他上普通课堂,由上午 9:00 至 下午1:00,然后出席有关剧场的课堂。他不但在学校演奏一便士哨子,还会演奏卡祖笛 (en:kazoo)。
在1997 及 1998,格羅本在密歇根大学参与了Interlochen Arts Camp,当他在学校外开始参加声乐课堂,同时在Interlochen Arts Camp 又参与了音乐剧院。格羅本表示:“我一方面开始上音乐课堂,而另一方面,我又很投入于音乐剧院。我拥有一把不错的男中音声线,所以我开始在学校参与演戏及唱歌的制作。”[2]
于1998年后期,时17岁的格羅本被介绍到是他的声乐教练 -- 葛莱美奖最佳制作人/编曲家的得主大卫.科士打(en:David Foster)。 他以试演歌手的身份,为科士打演出一系列的倍受注目的项目,包括1999年 的葛莱美奖,当时为 Andrea Bocelli 作代替人。格羅本又与席琳·狄翁合唱科士打的歌曲“The Prayer”,以及在 1999年1月Gray Davis 当选加利福尼亚州州长的就职典礼。
格羅本在1999年又出席 Los Angeles County High School for the Arts(en:Los Angeles County High School for the Arts),更为剧院重要人物及毕业生。及后在宾夕法尼亚州匹兹堡的卡内基梅隆大学中修读戏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