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국학의 제6단계
광복 후의 국학은 해방을 맞이하여 희망에 찬 계기가 되는 듯 하였으나 곧이어 나타나는 좌우익 분열로 인하여 심각한 사상적 분열을 가져왔고 급기야는 1950년 6·25전쟁으로 인하여 인적 분열·국토의 분단이 장기화되었다. 6·25전쟁은 민족적 비극일뿐만 아니라 이후 남북한에서는 사상적 통제로 인하여 국학이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였다.
남한에서는 미국문화가 홍수처럼 밀려들어오고 있어 국학의 전통은 이제 전 국민의 관심사에서 멀어지기 시작하였고, 인문학의 중심적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으며, 전통문화는 두절되는 위기에 직면하였다.
해방직후에는 36년 동안 겪어왔던 일제식민통치에 의해서 소외당하고 말살의 위기에 있었던 우리의 문화를 되살리고, 정신적인 재 각성을 환기시켜 민족의 활로를 개척하자는 데 목적이 두어졌다.
먼저 일제강점기 말에 해산하였던 조선어학회(뒤에 한글학회로 개칭)와 진단학회가 부활되어 우리의 말·글·역사를 가르치기 시작하였으며 교재도 편찬하여 간행하였다.
그리고 많은 출판사가 설립되어 자체의 기획사업을 추진함과 동시에, 광복 전에 이룩된 많은 국학관계 저술들을 간행하였다. 정음사와 을유문화사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국가에서는 국사편찬위원회를 만들어 한국사의 편찬, 자료 수집과 보급 등을 하고 있다.
한편, 각 대학에서도 국어국문학과·사학과·철학과가 설치되어서 국학관계의 강좌를 개설하는가 하면, 교명을 국학대학이라 지은 대학까지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국학관계의 여러 학회가 창립되었는데, 역사·국어국문학·민속관계의 여러 학회들은 6·25전쟁으로 심각해진 위기 속에서도, 학문의 지속적인 유지·발전과 국학의 계승·선양이라는 목적과 사명 아래 동지적인 결속으로 이루어졌다.
역사학회·국어국문학회 등이 대표적이었다. 아울러 뜻 있는 대학에서도 국학연구를 서두르기 위한 연구소가 계획, 추진되었다. 연희대학교에서 동방학연구소가 설립되었고, 고려대학교의 민족문화연구소가 그 뒤를 이었다.
그 뒤에도 국학관계의 여러 학회가 계속해서 결성되고, 대학의 부설 연구소도 잇따라 설치되었다. 물론 이들의 학회와 연구기관은 모두가 국학관계만의 기관은 아니었다.
광복과 6·25전쟁을 전후하여 격변기를 극복하면서 각성된 학문적 열의를 보여주는 예증이기도 하였지만, 국학의 새삼스러운 발전을 다짐하는 계기가 되어준 것도 적지 않았다. 진단학회의 ≪한국사≫ 7권,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의 ≪한국문화사대계≫ 7책은 1950년대의 연구성과를 반영하여 주는 것이다.
한편 일제시기에 ≪조선왕조실록≫이 30부가 영인되었으나 한국학자들은 거의 이용할 수 없었으므로 국사편찬위원회에서 1955∼58년에 ≪조선왕조실록≫ 48책을 영인 보급함으로써 조선시대 연구가 증보문헌비고에 의거하던 데에서 실록을 중심으로 연구함으로써 활기를 띠게 되었다. 이 시기에 한글학회에서는 ≪큰사전≫ 6책(을유문화사간)을 펴내 국어사의 큰 업적이 되었다.
1960년 자유당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이후 우리의 경제가 급속도로 성장이 이루어지면서 광복 후에 밀어닥친 외국문물과 사상·학문의 무절제한 수용과 모방에 대한 대응으로서의 국학의식도 높아지게 되었다.
1960년대 국사학계의 최대의 관심은 일제식민사학의 극복이란 문제를 들고 나왔다. 조선의 실학연구, 조선 후기 사회의 발전, 고대사에서 구석기의 설정과 청동기시대의 설정, 나말여초의 호족의 시대설정은 바로 이런 결과의 대표적인 결과라 할 수 있다. 이기백의 ≪국사신론≫, ≪한국사신론≫은 이런 국사학의 대표적 업적이었다.
국가에서 한글전용정책이 실시되면서 한문은 중세문자로 전락되었고 국가 경제력의 비약적 발전과 유신체제라는 독재정권은 한국적인 정신과 문화의 특성의 발견에 열중하였다. 이러한 국학의식은 국민들로부터 반발을 가져오기도 하였지만 1970년대부터 국학연구운동은 현저해졌다.#p#分页标题#e#
우리 나라의 전통적인 고전을 국역하여 이를 보급시키는 민족문화추진위원회가 결성되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관계인사들의 정열적인 참여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고, 각 대학에 국사학과가 독립되기도 하였으며 1970년대의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발간한 ≪한국사≫ 25책이 발간되고 북한에서는 ≪조선전사≫ 33책이 간행되었다.
1970년대에는 낙후한 한국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기관으로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 발족되어 한국학을 연구하기도 하였고, 이어서 1991년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7책을 편찬하여 과거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한국문화를 전체적으로 집대성하였다. 이는 현대의 한국학의 금자탑이라 할 수 있다.
1980년대에 국내의 민주화 운동으로 유신체제가 붕괴되고 남북한의 교류가 시작되며 소련의 공산국가 해체는 국학의 새로운 발전을 가져왔다. 즉, 지금까지 소외되어온 민중에 대한 역사이해의 강조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역사가 제도사, 통치사 중심에서 인간의 생활사로 중시되었다. 이는 국학 인식의 이해가 바뀌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국학은 학문 연구가 세분화되는 경향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연간 600여 책의 단행본의 연구 업적이 나왔으나 거시적이고 종합적인 연구도 나왔다. 그 중요 업적으로는 조동일의 ≪한국문학통사≫ 5권, ≪한국사강좌≫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사≫등을 들 수 있다.
1990년대에는 고전 국역본의 씨디롬화가 진행되어 한국학 자료의 디지털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한국학이 국가중심, 체제중심, 제도사 중심의 연구에서 생활사중심의 역사학으로 진행된 것도 새로운 변화라고 할 수 있다.
현재 국학연구의 과제는 인문학의 중심과목으로 위치를 확보하는 길이다. 국학이 현재의 인문학의 중심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지 못하는 이유에는 근대화 과정에서 전통문화를 근대화시킴에 실패하였기 때문이고 이는 당시의 역사적 상황에 기인한다.
우리 나라의 근대화 과정은 비정상적인 과정을 밟아 근대정신을 전통문화와 접목시키는 것을 등한시하고, 일제의 식민지하에서 민족의 광복을 위한 대외투쟁적, 배타적인 정신에 몰두할 수 밖에 없었던 데서 기인한다.
그 결과 서양인문학이 한국의 인문학의 중심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광복 후 국학계에서는 이 점을 소홀히 여겨 이제 국학은 일반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우리 말과 문학, 역사가 교육의 기초과목이 되어야함에도 불구하고 학문이 서양에서 발달한 자연과학과 기술존중의 문화 속에서 국학의 기능은 제 자리를 상실하였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역사학과 국어국문학 등의 국학이 과거의 전통문화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현대문화에 이르는 근대, 현대의 문제를 비중있게 다루지 않으면 안 된다. 더구나 세계화, 인터넷의 정보화 시대에 직면하여 한국학은 우리 것, 전통적인 것 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안목에서 열린 자세로 전통문화를 현대문화와 접목시킴에 엄청난 노력이 경주되어야 한다.
또한 우리들의 생활과 의식 속에는 전통문화의 정신이 계승되고 있으면서도 현실적인 각종 제도 속에는 전통문화의 맥이 두절된 문화적 병리현상을 앓고 있다.
이를 현실에 맞도록 한국학의 폭을 현대적으로 폭넓게 확대시켜야 할 것이다. 이런 의식이 왕성하게 발전하지 못한다면 21세기의 소리 없는 문화전쟁 속에서 한국문화는 소멸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의 한국학은 종래의 국학이란 좁은 범위에서 과감한 탈피를 하여 새로운 인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중단된 전통문화를 현대사회에 접목시킴에 국가적인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지금처럼 한국문화가 그 독자적 성격을 상실한 때도 유사 이래 처음 겪는다. 그리고 국학의 자료수집과 현대적 번역 등에도 국가적으로 힘써야 할 것이다.
국학이 한국 인문학의 중심적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국민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 가를 국학 연구자, 정치가, 사회지도층은 심각하게 의식하고 국학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p#分页标题#e#
국학은 거의 100년 동안 근대적인 연구가 진행되어 왔는데 국수주의적 성향이 강하다. 이는 근대학문이 시작될 무렵에 함께 생긴 민족주의적 영향을 강하게 띠었기 때문이다. 현재의 민족주의 정신을 버려서는 안 되지만 우리 문화가 세계에서 최고라는 우물안 개구리식의 편협한 민족주의는 수정되어야 한다.
이제 보편적인 원리를 한국학에서 찾아야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의 문화와 비교 연구하는 개방된 시각이 절실히 요구된다. 한국학이 보편성을 강하게 띠려면 사회과학의 도움을 많이 받아야 한다. 사회과학도들이 한국학에 관심을 기울일 때에 한국학은 새로운 전기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