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한국문화협회가 80여만 원의 제작비를 들여 만들었다. 16mm 무성영화이다. 윤봉춘(尹逢春)이 각본과 감독을 맡고 고춘희(高春姬)·이선경(李善慶)·이일선(李日善)·박순봉(朴順奉) 등이 출연하였다. 1948년 4월 8일 동양극장과 중앙극장에서 동시에 개봉하여 15만 여 명의 관객을 모았다. 3·1운동 당시 독립만세운동에 앞장섰다가 일제에 의해 죽임을 당한 유관순의 일생을 그린 전기물이다.
1919년 3월 1일 조선의 독립을 요구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일어나자 당시 이화학당에 다니던 유관순은 가두시위에 앞장선다. 일제가 휴교령을 내리자 유관순은 고향 천안으로 내려가 독립시위를 주도한다. 마을사람들이 아우내 장터에 모여 일제히 독립만세를 부르자 일경은 시위를 진압하고 유관순을 체포한다. 감옥에 갇혀 고문을 받으면서도 자신이 주동자임을 주장하던 유관순은 결국 옥고를 이기지 못하고 19세의 나이로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