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상징적 특성
금채색적(禁彩色的), 백색·청색 지향성 한국 문화 속에 반영된 색채의 특성은 색채를 직접 감각적인 감정이나 미적 감수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인식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음양오행적인 우주관에 근거하는 의미 또는 상징적 관념을 더 중요하게 의식하고 표현하기 위하여 사용하였다는 데 있다.
소복을 입는 의미, 혼인 때 청단·홍단을 동심결하는 의미, 주칠(朱漆)하는 의미 등 모든 생활에 의미와 상징적 관념이 많았다. 그래서 때로는 의미의 과잉이 형식주의를 낳고 의견대립으로까지 비화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이다. 이러한 의미와 상징을 감정이나 감각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우리의 정신세계와 생활양식을 지배하였던 유교적 사고방식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대체로 우리의 사상이란 인간적인 감각과 감정(관능적인 차원)을 멀리하고 인격과 형식, 규범(정신적 차원)을 중요하게 생각하였던 사상 체계였다. 그래서 색은 욕정(欲情 : 五彩는 五欲으로 상징된다) 등으로 동일시하여 가까이하지 않았다. 백색을 숭상하였던 백의민족이라는 의식의 일면에는 이와 같이 금욕적 인격 완성에 이르는 한국인 특유의 탈감각적(脫感覺的) 인생관이 엿보인다.
오늘날 우리의 색채 의식도 다소 변화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인, 특히 지식인일수록 한결같이 원색·유채색 등을 유치한 것으로 인식하는 이면에는 이러한 의식의 일면이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한국인의 옷 하면 흰색을 연상하듯이 한국의 색채 하면 흰색과 청색을 연상한다. 한국인이 사용하는 색채어(色彩語) 가운데에서도 가장 집약적으로 잘 쓰이는 것이 백색과 청색이다. 백자(白磁)·백학(白鶴)·백미(白眉)·청자(靑磁)·청송녹죽(靑松綠竹) 등이 그러하다.
고매한 인격·인품·정절(貞節)의 정신세계로 지향하려는 이상적인 인간상이 ‘학처럼 산다’라는 학의 아날로지(analogy, 類同代理物)로서의 백색에 대한 강한 기호 반응(嗜好反應)을 나타낸다. 그리고 숭고하고 고귀하며 고절(高絶)·선(善)에의 지향은 항상 푸름을 가지는 송죽(松竹)의 아날로지로서 청색에 대한 강한 기호 반응을 나타낸다. 사실 고려청자의 시각적 빛깔은 비색(緋色 : 밝고 은은한 옥색)이지만 그 독특한 빛깔, 품위, 뛰어남의 의미가 상징되는 푸름의 청자인 것이다.
한국인은 자기 감정을 즉각적으로 나타낸다는 것은 점잖지 못한 것으로 의식화되어 있다. 그리고 얼굴을 붉으락푸르락 하는 것(彩色한다는 행위 개념)은 점잖고 인격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와 같이 한국 문화 속에 반영된 대부분의 색채와 색채의 생활화는 희로애락·감정·감각·욕망 등을 색채에 직접 감정 이입(感情移入)하거나 감정 투사(感情投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어떤 의미와 결부하거나 의미를 부여하여 간접적으로 은근히 표현하였다고 생각된다.
태어나서 흰옷을 입고 평생을 흰옷을 입고 살다가 죽어서 흰옷(수의)을 입고 자연에 돌아간다. 이때의 흰옷이란 있는 그대로의 색(無色, 素), 즉 색깔이 없는 상태로서 탈색채(脫色彩)·금채색(禁彩色)의 인생관에 이르게 된다. 이렇게 하여 한국의 문화에 나타난 색채는 금채색 사상을 바탕으로 백색과 청색에 지향하려는 색채의 상징적 의미와의 만남과 그 생활화가 커다란 특성으로 부각된다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