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의상과 색채
흰옷은 한국인의 대명사처럼 인식되고 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을 가리켜서 백의민족(白衣民族)이라고도 말한다. 그것은 공기(工技)·농민·서민은 물들인 옷을 입지 못하게 한 한국 문화의 특수성에 기인한다. 그러나 1357년(공민왕 6년) 사천소감 (司天少監) 우필흥(于必興)은 복색(服色)을 오행에 맞도록 개혁할 것을 주장하였다.
또 1406년(태종 6년) 황해도 관찰사 신호(申浩)가 상언하기를 무색옷은 좀먹기 쉽고, 또 만들기 어려우므로 백색을 청색(우리 나라는 東方이며, 東方은 오행으로 볼 때 靑色이므로)으로 하자는 등 탈백색(脫白色)의 노력도 기록에는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은 모두 무색 천[白紵]으로 된 옷을 입었다.
한편, 관복(冠服)·왕복(王服)·영관복(令官服)·국상복(國相服)·근시복(近侍服)·종관복(從官服)·경림복(卿臨服)·한관복(閒官服)·서관복(庶官服)과 같은 공복(公服)은 그 품계 및 계급별로 색채를 사용하였다. 높은 계급일수록 적색·자색이 많고 낮은 계급일수록 청색·황색·백색을 많이 사용하였다. 시대에 따라 다소 다르기는 하지만 자색(紫色)·비색(緋色 : 분홍빛이 도는 빨강)·청색·황색 등이 공복 색(公服色)의 주조를 이루었다.
남자의 통상 예복인 도포는 밝은 옥색이며, 관례 때 관자(冠者)는 청포(靑袍)를 입었다. 신부의 혼례 예복은 녹의홍상(綠衣紅裳, 또는 紅色 저고리·藍色 치마)을 입었다. 그리고 문무관이 종묘 제례 때 입는 흑단령(黑團領)은 검은색이다. 또한 상례 때에는 백도포(白道袍)·소복(素服)·소혜(素鞋 : 신발)를 신는다.
신부가 신랑집에 들어갈 때 머리에서부터 온 몸을 덮는 면사포(面紗布)는 홍사(紅紗)로 만든 것이다. 조선시대 무관의 예복인 동다리옷은 전체가 주홍색이고 소매 부분만 적색(赤色)이다. 무당이 입는 원삼(圓衫)은 색동저고리에 청색 치마이다. 신생아는 목욕 뒤 백색 옷을 입히고 과장(科場)에 입장할 때 청포에 유건(儒巾)을 쓴다.
이와 같이 오례 및 일반 서민의 관혼상제 및 기타 여러 가지 의식에 따라 각각 다른 의상과 다른 색채의 옷을 입었다. 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 용품까지도 이러한 이치에 따름으로써 다양한 색채, 다양한 의미를 부여한 문화를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