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7년(목종 10)에는 목판인쇄물 ≪보협인다라니경 寶匧印陀羅尼經≫이 총지사(摠持寺)에서 간행되었다. 또 호국불교의 이념에 따라 강화도 대장도감(大藏都監)에서 1236년(고종 23)부터 1251년까지 제2차 ≪고려대장경 高麗大藏經≫이 간행되었는데, ‘팔만대장경’으로 통칭되는 이 대장경의 판목은 지금도 해인사에 보존되어 있다(팔만대장경 포함 '해인사장경판전'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1995.12.9.).
서양의 목판인쇄는 14세기나 15세기에 시작되었다. 15세기 초의 것으로 추정되는 한 장짜리 목판인쇄물 ≪면죄부≫·≪성 안토니우스≫·≪성모 마리아의 죽음≫·≪십자가 위의 그리스도≫ 등이 있는데, 모두 기독교에 관한 것이다. 목판본으로는 1430년경의 ≪가난한 이의 성전≫·≪도나투스≫ 등이 있다.
990년(성종 9)에 왕의 교서로 설치된 수서원은 많은 도서를 소장하여 신하들이 이용하게 하였고, 995년에 내서성을 개칭한 관청인 비서성은 국가 출판기관 구실을 했으며, 특히 서적포(書籍鋪)는 1095년∼1105년 사이에 국자감(國子監) 진흥책의 하나로 설치된 출판부로서 도서 간행에 힘썼다. 1392년에도 서적원을 두어 활자 주조와 도서 인쇄에 관한 일을 관장하게 하였다.
출판문화의 발전은 교육의 발전과 긴밀한 관계가 있어, 고려시대에는 관료 지망자를 교육하는 국자감과 사학(私學)이 설치되었으며, 또 지방 교육기관으로 향교가 설치되었다. 국자감에 서적포를 설치한 것은 이들 교육기관에 필요한 교과용 도서를 출판하기 위한 정책의 일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