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목 국보 제9호
명 칭 부여정림사지오층석탑(扶餘定林寺址五層石塔)
분 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불교/ 탑
수량/면적 1기
지 정 일 1962.12.20
소 재 지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379
시 대 백제
소 유 자 국유
관 리 자 부여군
설 명 부여 정림사터에 세워져 있는 석탑으로, 좁고 낮은 1단의 기단(基壇)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이다. 신라와의 연합군으로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정벌한 기념탑’이라는 뜻의 글귀를 이 탑에 남겨놓아, 한때는 ‘평제탑’이라고 잘못 불리어지는 수모를 겪기도 하였다.
기단은 각 면의 가운데와 모서리에 기둥돌을 끼워 놓았고, 탑신부의 각 층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을 세워놓았는데, 위아래가 좁고 가운데를 볼록하게 표현하는 목조건물의 배흘림기법을 이용하였다. 얇고 넓은 지붕돌은 처마의 네 귀퉁이에서 부드럽게 들려져 단아한 자태를 보여준다.
좁고 얕은 1단의 기단과 배흘림기법의 기둥표현, 얇고 넓은 지붕돌의 형태 등은 목조건물의 형식을 충실히 이행하면서도 단순한 모방이 아닌 세련되고 창의적인 조형을 보여주며, 전체의 형태가 매우 장중하고 아름답다. 익산미륵사지석탑(국보 제11호)과 함께 2기만 남아있는 백제시대의 석탑이라는 점에서도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며, 세련되고 정제된 조형미를 통해 격조높은 기품을 풍기고 있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定林寺五层石塔,高8.33米,由花岗岩磨琢而成的高雅石塔,与益山弥勒寺址的石塔均被称为韩国石塔之始祖。附近还有一座被推测为高宗时代雕塑的石佛坐像,每到黄昏时刻,夕阳余辉映染石塔的景致美丽动人,故称“百济塔夕照”,列为扶余八景之一。游客由扶余郊区公共汽车站步行到定林寺址只须5分钟。公元538年,扶馀成为百济王朝的首都,到660年遭罗唐联军攻陷而灭。蜿蜒的白马江源远流长地诉说着数百年来的兴衰荣辱。 扶苏山是百济最后的国王。沿白马江湖畔徐徐而行,途中有一座百花亭。传说当年有三千名百济宫女遭罗唐联军追逐走投无路,投江于此。而她们投江时的身影,如同杜鹃花凋谢坠落,故称此岩壁为落花岩。
定林寺在扶馀市郊,寺中的5层石塔,高8.33米,与益山弥勒寺的石塔并称韩国石塔始祖。附近有一座高丽时代的石佛坐像,黄昏时分,夕阳余辉投射到石像上,故称“百济塔夕照”。
自公元前57年至935年为新罗首都的庆州,曾有千年之久的繁荣,被称为“无围墙的博物馆”。定林寺址5层石塔与现存的弥勒寺址石塔一起均为百济时期建造的众多百济塔之一,是研究韩国石塔样式的发展过程的重要作品。这座定林寺址5层石塔体现了一种均衡美,整体气氛干净利落,安定平稳,庄重威严,后期的一些石塔在建造时竞相摹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