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식민지 시대 전후의 일본인들이 한국을 어떻게 여기고 한국과 어떤 관계에 있었는지 생생하게 묘사한다. 정치인 사상가 학자 문화인 종교인 등 당시 일본을 대표하는 72명의 인물을 통해 일본인의 한국관과 한국과 연관된 삶의 단면을 드러냄으로써 한일관계사의 숨겨진 구석구석에 역사의 빛을 비춰준다.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조선총독으로 한국을 무자비하게 지배한 자, 한국 문화재를 약탈한 수집가, 조선백자에 탐닉한 미술사가, 식민지 민중을 위해 발로 뛴 변호사 등 여러 분야에 걸쳐 폭 넓게 걸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한일관계사의 풍부하고도 다채로운 이면을 흥미롭게 보여 주는 책이다.
첫 번째 인물은 정한론을 주장하다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사이고 다카모리. 이어 조선을 취하는 것이야말로 신성한 길이라고 주장한 요시다 쇼인, 일본에서는 근대사상의 선구자로 추앙받지만 아시아 멸시의 이념을 제공한 것으로도 평가되는 후쿠자와 유키치, 한국통감으로 악명 높은 이토 히로부미 등이 등장한다. 한국 강점에 관여한 이들을 먼저 다룬 것은 일본인의 그릇된 한국관의 뿌리를 찾기 위해서다.
식민시대를 통해 일확천금을 꿈꾸며 한반도에 들어온 이들도 많았다. 오구라 다케노스케는 한국 문화재를 닥치는 대로 수집해 오구라 컬렉션을 만들었다.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한국에 연민과 애정을 지닌 이들, 민족을 넘어 인간의 존엄이란 원칙을 지킨 일본인들도 있었다. 야마자키 게사야나 후세 다쓰지 등의 인권 변호사는 민중의 권리를 위해 헌신했다. 우리의 고아를 돌보는 데 평생을 바친 다우치 지즈코, 한국인 피폭자의 한을 가슴으로 껴안고 그들의 권리를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 마쓰이 요시코 등은 민족을 넘어서 보편적인 휴머니즘을 구현했다.
편저자 다테노 아키라 씨는 조선을 착취한 악인, 잔혹한 식민통치에 반대한 선인으로서 일본인의 양면성을 동시에 드러낸다. 저자는 이와 함께 역사적 제약 속에서 자신들의 한계를 인식조차 못하고 살다간 수많은 인간군상을 살펴볼 기회를 마련한 것에 만족감을 표하고 있다. 물론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과거 일본인의 행태를 관대하게 볼 수 없다. 하지만 이 책의 시도처럼 다채롭고 다양한 시선으로 일본인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요즘처럼 반일의 분위기가 팽배한 때일수록 더욱 필요하지 않을까.
이원덕(일본학) 국민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