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0년전, 당나라의 문성공주는 당시 번화한 도시였던 장안(오늘날 산서 서안의 북쪽에 위치함)을 떠나 서쪽으로 3000km를 지나서 토번왕 송짠감보와 화친을 했다. 이는 당조와 토번의 우호교류의 새로운 기원을 열어놓은것이다.. 송짠감보와 문성공주의 이야기는 오늘날까지 한(漢)-티베트 두 민족사이에 널리 유전되고 있다.
7세기초, 중원지구에서 수년간 전쟁을 거쳐 이연(李淵, 당고조), 이세민(李世民, 당태종) 부자는618년에 장안성에 중국 역사이래 전례없던 대당제국을 건립했다. 당시 국력이 강성한 당나라는 동부아세아지역의 문명중심지로 전변하여 주변의 민족부락에 강렬한 영향을 끼쳤기에 많은 민족부락은 전후로 당조와 우호관계를 맺었다.
정관8년(634), 송짠감보는 토번(티베트족의 선조)의 짠보(국왕)로 즉위했으며 13살 어린 나이에 론커얼(論科耳), 상낭(尙囊) 등 신하의 보조하에 반란군을 토벌하고 토번을 통일시켰다. 당나라가 중원지구에서 제패하고 있을 때 송짠감보도 고원에서 군림을 하였으며 일부 소국을 겸병하고 로소(지금의 서장자치구 라싸)에 서울을 정하여 통일된 토번왕조를 세움과 동시에 적극적으로 당조와의 밀접한 관계를 도모했다. 기원 634년부터 두차례를 거쳐 말도 잘하고 총명한 사신 록동짠(綠東贊)을 당나라에 파견하여 당태종에게 화친을 요구하였다. 기원641년 당태종은 드디어 송짠감보의 화친요구에 동의했으며 문성공주를 그에게 시집보내기로 승낙했다.
록동짠은 자신의 총명과 재질을 잘 발휘하여 당태종이 낸 여러 난제를 해결해 마침내 송짠감보가 아름답고 선량한 문성공주를 맞이할 수 있게 한 이야기는 티베트족 민간이야기에도 많은 기록이 있다.
당시 당나라에서 한창 불교가 성행되고 있을 때 토번에는 불교가 없었다. 문성공주는 아주 지극한 불교도로서 토번으로 갈 때 불탑, 경전, 불상을 갖고 갔으며 그곳에 불사를 세워 불교를 널리 알릴 것을 결심했다.
문성공주는 한면으로 불교를 널리 알려 백성을 위해 행복을 기원함과 동시에 다른 면으로는 오곡종자 및 유채씨를 가져와 백성들에게 파종방법을 가르쳤다. 옥수수, 감자, 누에콩, 유채는 고원기후에 적합해 잘 자랐고 밀은 끊임없이 변종되어 오늘날 티베트족 인민들이 즐겨먹는 쌀보리로 변종했다. 문성공주는 또 차, 말, 소라, 낙타 그리고 생산기술과 의학서적을 가져와 토번의 사회진보를 추진하였다.
송짠감보는 현숙하고 다재다능한 문성공주를 무척 사랑하여 그녀를 위해 부다라궁을 수건했다. 부다라궁은 모두 1000개의 궁실로 이루어졌으며 외관이 화려하고 웅위하다. 하지만 그후 번개와 우뢰, 전쟁에 의해 파괴되었는데 17세기의 두차례 확대건설을 거쳐서야 현재의 규모를 이룰 수 있게 되었다. 부다라궁 주건물은 13층으로서 높이 117m, 총 면적은 36만㎡에 달해 웅위한 기백을 자랑하고 있다. 부다라궁에는 많은 벽화들이 보존되어 있는데 그 중에는 당태종이 다섯번이나 토번의 사신 록동짠을 시험한 이야기와 문성공주가 토번으로 가는 길에서 겪은 간난신고 및 라싸에 도착한 후 티베트족 인민들의 뜨거운 환영을 받고 있는 장면들이 담겨져 있다.
송짠감보가 문성공주를 아내로 맞아들인 후 중원과 토번의 관계는 더욱 밀접해졌으며 그 후 200여년간 전쟁이 거의 발생하지 않아 평화적 국면을 형성할 수 있게 되었다.
영용하고 지혜로운 송짠감보는 티베트를 통일한 후 토번의 정치, 경제, 문화발전을 추진시켰고 티베트족과 한족간의 우정을 돈독히 함으로서 중국의 통일된 다민족국가의 역사발전을 위해 큰 기여를 했다. 문성공주는 고생을 무릅쓰고 머나먼 토번에 시집간후 당나라와 토번의 경제문화 교류를 크게 추진했고 한족과 티베트족 사이의 우정을 한층 깊이 함으로서 역사적 기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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