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2002 <영웅>
진시황이 통일천하를 꿈꾸던 2000년 전 그 때, ‘전국 7웅(戰國七雄)’이라 불렸던 일곱 국가들이 중국대륙을 지배하고 있었다. 각 왕국들은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루기 위해 무자비한 전쟁을 수 없이 치뤄 왔고, 그 결과 무고한 백성들은 수 백년 동안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처참하게 버텨내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군대를 갖고 있는 진나라의 왕 영정은 중국대륙 전체를 지배하여 첫 번째 황제가 되고자 하는 야심에 가득 차 있었다. 이미 절반이 넘는 중국대륙을 평정한 그는 나머지 여섯 국가의 암살 표적이 되었지만, 1만 명이 넘는 왕실의 호위 군사와, 시종일관 왕의 백 보 안에서 움직이는 최정예 호위대 7인을 돌파해 영정을 암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영정은 암살의 위협에서도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았지만 자신을 노리는 자객들 중 전설적인 무예를 보유한 세 명의 자객-은모장천, 파검, 비설 만은 두려워하였다. 이에 영정은 자신의 백 보 안에 그 누구도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하는 백 보 금지령을 내리고 수 많은 돈과 관직을 현상금으로 내걸어 그들을 잡아들이라고 명령했다. 어느 날 지방에서 백부장으로 녹을 받고 있는 한 미천한 장수 무명이 정체 모를 세 개의 칠기상자를 가지고 영정을 찾아오고 영화의 스토리는 이 이름 모를 장수의 출현으로 전개된다.
<영웅>은 2000년 전 진나라가 중국 천하를 통일하기 이전에 ‘전국 7웅(戰國七雄)’이 패권을 놓고 다투던 때가 시대적 배경이다. 진나라에 의해 가족을 잃은 조나라의 무사 4명이 진나라의 왕을 죽이기 위해 무술을 연마하나 천하통일만이 나라를 위하는 길임을 깨 닳은 무사(무명)가 개인적인 감정과 복수심을 접고 진나라 왕의 대업을 이해하고 떠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영화가 장예모 감독의 특기이자 장기인 화려한 색감과 수려한 영상, 감각적인 촬영기법을 이전의 작품보다 한층 더 깊고 선명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은 감동받을 만한 부분이지만, 사실 그보다 더 집중해야 하는 것은 영화의 흐름과 주인공의 대사 한마디 한마디에 깃들어 있는 매혹적인 동양사상과 동양적인 정서가 아닐까 싶다.
“검술의 제1의 경지는 인간과 검이 하나가 되는 것으로 검이 곧 사람이요, 사람이 곧 검이니 수중의 풀조차 무기가 될 수 있다. 검술의 제2의 경지는 손 대신 마음으로 검을 잡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백 보 밖의 적도 맨손으로 제압할 수 있다. 그러나 검술의 최고 경지는 손으로도 마음으로도 검을 잡지 않고 모든 것 포용하는 큰 마음이다. 최고의 경지는 곧 살생이 없는 평화를 뜻하는 것이다.”
이 대사는 무사가 진나라의 왕을 찌를 수 있는 절호의 찬스에서 왕을 찌르기 대신해 천하통일을 도모하는 왕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말하자, 왕은 세상에 살면서 자신을 이해해 주는 사람을 만났으니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하며 무사에게 자신의 칼을 건네고 찌르기를 기다리며 뒤에 걸려있는 ‘검(劍)’이라는 글자를 바라보며 한 말이다.
이는 검술이 단지 손재주에 의한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적을 상대해야 함을 의미하고, 더 나아가 손으로도 마음으로도 검을 잡지 않고 모든 것을 포용하는 마음이야말로 최고의 검술임을 시사한다. 바로 이러한 사상이 주어진 미션을 멋지게 소화하지만 모든 문제의 근본인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 괴로워하는 서양의 대표적 영웅들과 대비되는 동양 영웅들의 특징이다. 우리의 역사 속 대표적인 동양의 영웅들은 가장 먼저 자신의 마음부터 수양해야 비로소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실력 있는 영웅으로서의 자격이 주어짐을 깨우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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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영웅>은 진시황에 대한 미화와 춘추전국시대의 중국을 지나치게 포장하여 그려냈다는 이유로 개봉 이후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는 감독이 자신만의 사상을 표현하기 위해서 부득이하게 필요한 ‘장치’ 정도로 생각해 주어도 될 것 이라는 의견도 많았다. 어떠한 시대극이나 역사극도 조금의 딜레마는 수반할 수 있으니 말이다.
<영웅> 이후로도 꾸준히 사진만의 창작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장예모 감독의 행보는 여전히 전세계 문학계가 주목하고 있으며, 오랫동안 정성을 다해 우려낸 듯한 그의 작품에 빠져들어 그의 옛날 작품을 하나하나 찾아보는 관객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진한 파급력으로 관객들의 정서에 선명한 붓놀림을 더하는 장예모 감독의 작품은 중국의 국보(國寶)이자 동양의 걸작(傑作)이다. (김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