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개최된 다보스 포럼에서는 향후 15년간 인류에 대변혁을 가져올 현상들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 이 포럼에서 한 미래학자는 향후 수 십 년 안에 종이에 인쇄된 형태로 지식을 전달하는 방식이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백과사전이나 인터넷 소설을 막론한 다양한 종류의 편리한 매체들이 개발되어 정보습득의 필요성에 부응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2012년을 기해 인쇄판 발행을 중단한 미국의 저명한 시사주간지 뉴스위크(NEWSWEEK)의 사례가 그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비디오와 카세트테이프가 홀연히 사라졌듯 인쇄술의 시대 또한 어쩌면 곧 막을 내릴지도 모른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과거 우리의 선조들이 단순히 기억에 의존해 지식을 전하던 틀을 깨고, 인쇄술을 통해 쉽고 빠르게 보다 널리 지식을 저장하고 운반할 혁신을 이뤘다는 점을 아로새길 필요가 있다. 우리의 당연한 편리함 중 하나인 인쇄술의 발현과정에는 많은 이야기가 숨어있다.
종이와 묵의 발명에 기초해 발전한 고대 인쇄술은 크게 조판인쇄술과 활자인쇄술 두 가지로 나뉜다. 수당 시기에 발명되었다고 전해지는 조판인쇄술은 고대 돌이나 도장에 글을 새기는 석각(石刻) 방식에 기원을 둔다. 이것은 목판에 좌우가 뒤바뀐 문자를 양각(陽刻)하여 그 위에 먹을 바르고 종이를 덮어 탁본하는 방법이다.
조판인쇄술
중국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조판인쇄물은 당나라 함통(咸通) 9년(868)에 인쇄된 금강반야바라밀경 (金剛般若波羅蜜經)으로, 글자의 조각기술이나 인쇄수준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보아 당나라 때 조판인쇄술이 이미 널리 보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에서는 이러한 조판인쇄술이 한국과 일본으로 전파되었다고 하지만, 실제로 현존하는 세계 최초의 목판인쇄본인 우리나라의 무구정광대다라니경(706~751경)은 이보다 100여 년이나 앞서 있다.
이러한 조판인쇄술은 조판인쇄술은 보통 수백에서 수 천 권까지 인쇄가 가능하여 문화전파에 큰 도움을 주었지만 책을 인쇄하는 데 수년씩을 걸리고, 인쇄판은 보관 공간을 많이 차지했다. 또한 쉽게 형태가 변하고 부식되어 꾸준한 관리가 필요했다. 따라서 인쇄할 양이 적고 중요한 책이 아닌 인쇄판은 바로 무용지물이 되었다. 조판인쇄술의 여러 불편함을 상쇄시키기 위해 발명된 것이 바로 활자인쇄술이다.
활자인쇄술
송나라 인종(仁宗) 경력(慶曆) 연간(1041~1048)에 평민 출신인 필승(畢昇)이 발명한 활자인쇄술은 조판인쇄술의 불편함을 개선하고 보완한 경제적이고 실용적인 인쇄술이다. 그가 발명한 활자인쇄술의 원리는 먼저 점토 위에 활자를 반대로 새긴 후 불에 구워 단단하게 한 다음 활자판을 만들어 그 위에 배열하고, 활자판 위로 접착 성분의 밀랍을 발라 고정해 인쇄하는 것이다.
활자인쇄술은 조판의 결점을 정확히 보완해 주었다. 충분한 낱개의 활자만 준비되어 있다면, 쉽게 활자를 조합하여 언제나 빠르게 인쇄판을 만들 수 있었다. 또한, 다른 내용을 인쇄할 때는 기존 활자판의 활자를 떼어내고 재배치하여 다시 사용할 수 있어서 실용적이고, 보관도 용이했다.
이후 활자인쇄술은 계속 발전하여 목판활자가 발명되었다. 원나라 때 왕정(王禎)은 운(韻)에 따라 목판활자를 체계적으로 배열해 필요한 활자를 아주 편리하게 찾아낼 수 있게 한 '회전자판법'을 발명함으로써 인쇄 속도를 더욱 배가시켰다. 활자인쇄술은 한국과 일본 그리고 동남아시아에 전파되었고, 또 실크로드를 거쳐 이란과 이집트를 비롯한 유럽에 전파되었다.
이러한 역사성을 인정받아 중국의 인쇄술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어있다. 현대 과학기술에 밀려 인쇄술이 언젠가 사라진다 해도 인쇄술은 우리가 잊어서는 안될 인류의 위대한 유산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