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남침(指南針, 나침반)이 정확히 어느 시기에 만들어졌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전설 시기 황제(黃帝)가 치우(蚩尤)와 탁록(涿鹿)의 벌판에서 전쟁을 벌일 당시, 안개 속에서도 사방을 분별할 수 있는 지남차(指南車)를 만들어 치우를 무찔렀다는 고사(故事)가 전해지고 있다. 실제로 지남침의 ‘지남(指南)’이라는 단어는 후한(後漢)의 저명한 과학자 장형(張衡)의 동경부(東京赋)에서 처음 사용되어 지남차를 제작했다는 설이 있으나, 그 제작방법은 전해지지 않는다.
송나라 때에 이르러서야 당시 유명한 과학자인 심괄(沈括)이 그의 저서인 몽계필담(夢溪筆談)에 나침반의 발전과정, 유형과 원리에 관해 상세한 기록을 남겼다. 기록을 살펴보면 생산과 과학실험의 발전, 특히 항해와 무역이 발달하면서 나침반이 발전하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그는 나침반이 전적으로 남쪽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약간 동쪽으로 기울어져 있음도 밝혀냈다. 이것이 바로 자편각(磁偏角)인데, 이로 인해 나침반의 방향을 더욱 정확하게 할 수 있었다.
정화(鄭和)
나침반의 발명은 군사, 일상생활, 지형 측량뿐만 아니라 항해에도 응용되었다. 주욱(朱彧)의 평주가담(萍州可談)에서는 "밤에는 별을 보고, 낮에는 해를 보고, 흐린 날에는 나침반으로 항해하였다(夜则观星, 昼则观日, 隐晦观指南针)”, 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이 나침반을 사용한 세계 최초의 기록이다. 원나라 때에 들어 비로소 나침반은 항해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명나라 초(初), 항해사 정화(鄭和)는 1492년 콜럼버스(Columbus)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이나 1497년 바스쿠 다 가마(Vasco da Gama)가 인도의 서해안에 도착한 것보다 반세기 앞서 서양을 항해했다. 그는 7차례나 원거리 항해를 하여 이를 칠하서양(七下西洋)이라고도 한다. 그 조직과 인원이 28000여 명에 달해, 선박의 건조와 항해 기술은 매우 선진적이었을 것으로 해석된다. 그의 항해는 중국의 대외무역량을 증가시켰고, 동서양의 경제와 문화교류를 촉진시켜 중국의 국제적 영향력을 드높였으며 세계 여러 나라와의 관계를 돈독히 다지는데 앞장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나침반은 약 12세기 말에서 13세기 초 아랍을 통해서 서양으로 전해졌다. 아랍에서 유럽으로 넘어간 나침반은 유럽에서 발전을 거듭한 끝에 오늘날과 유사한 형태의 나침반으로 발전하여 일본을 통해 다시 중국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서양으로 전해진 나침반은 서양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것을 시작으로 마젤란의 인류 최초의 지구일주 항해에 이르기까지 나침반은 세계 경제무역의 발전과 자본주의의 발전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오늘날 나침반의 바늘 끝은 지구 한 바퀴를 돌아 다시 동양으로 향하고 있다. 세계의 중심은 지금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다. 지난해 말 줄리아 길라드 호주 총리가 국가 전략의 중심을 아시아로 이동하는 정책의 대전환을 꾀한 것은 이를 반증한다. 21세기는 ‘아시아의 세기’ 이다. 이럴 때일수록 국가간 상호소통이 원활히 이루어져, 평화와 안정이 흔들리지 않도록 유의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