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을 대하는 태도가 확연히 달라진 정황이 드러난 건 박 전 대통령 측이 22일 0시 53분쯤 취재진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다. 손범규 변호사는 ‘악의적 오보, 감정 섞인 기사, 선동적 과장 등이 물러가고 진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것을 봤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진실을 밝히기 위해 애쓰신 검사님들과 검찰 가족에게 경의를 표한다’고도 했다. ‘수사가 끝나면 어떤 형태로든 검찰이 고생했다고 표현해주라’는 박 전 대통령 지시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뜬금 없는 ‘경의’를 전달 받은 검찰 측 관계자는 “그 분 말씀 취지가 잘 이해가 안돼 뭐라 말하기 어렵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 측은 파면 결정 전까지 검찰 수사에 대해 “사상누각” 등으로 표현하며 ‘도저히 객관성과 공정성을 믿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던 만큼 달라진 자세에 검찰도 당혹스런 표정이다.
박 전 대통령이 14시간 남짓 조사실에서 진술을 마치고 난 1시간여 뒤 이런 메시지가 나온 데는 일단 박 전 대통령이 하고 싶은 말을 충분히 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박 전 대통령은 미르ㆍK스포츠재단 강제모금이나 삼성의 정유라 지원 등 본인이 억울하다고 여기는 대목들은 상당히 적극적으로 항변하며 부인해온 입장을 유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가 정지된 뒤 인터넷매체 ‘정규재TV’ 인터뷰 등에서 혐의 부인은 물론 기획설까지 제기해 역효과가 났지만, 그간 꺼리던 검찰 조사에서 자신의 뜻을 장시간에 걸쳐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이 굳이 영상녹화 거부의사를 수용해주고 “대통령님”으로 불러주는 등 조사 과정에서 전직 대통령 예우를 갖춘 것도 한 요인이 됐다는 얘기가 나온다. 박 전 대통령은 당일 조사에서 언성을 높이거나 눈에 띄는 불쾌감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누가 보더라도 검찰을 향한 과잉 메시지는 박 전 대통령의 사법처리 문제와 연관돼 있다는 분석이 많다. 물론 박 전 대통령 측도 구속까지 염두에 두고 대비하고 있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하고 있으나 재판까지 감안하면 구속과 불구속 기소의 차이는 매우 크다.
서울 소재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거액의 뇌물수수 등 중대한 혐의와 전직 대통령 구속 전례, 구속수사를 당연시 하는 여론, 불구속 수사 시 쏟아질 비난 등을 감안하면 검찰이 사전구속영장 청구로 가닥을 잡을 가능성이 높은 점을 박 전 대통령 측이 모를 리 없다”며 “검찰 수뇌부의 의중을 살피며 던진 메시지 정도가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새로 대통령이 뽑히면 ‘사면 모드’로 갈 테니 구속만 피하면 된다는 심산일 것”이라며 “변호인단이 ‘혐의를 전부 부인하고 있어 방어권 행사를 위해 구속수사는 안 된다’는 식으로 말할 것”이라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