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병풍.
그 앞에 연산 앉아 있다.
병풍 뒤에서 구슬프지만 아름다운 풀피리 소리 들려온다.
풀피리 소리 멈춰지고,
병풍 위로 손 인형 하나가 올라온다. 장생 인형(a)이다.
장생 인형, 병풍 위에 털썩 걸터앉는다.
공길 인형(b), 병풍 위로 고개를 삐죽 내민다.
공길 인형, 주춤거리며 다가와 장생 인형 옆에 와서 앉는다.
나란히 앉은 두 인형 화면 가득 잡힌다.
공길(off-sound)
(b)미안해.
(a)뭐가?
(b)주인마님 금붙이 내가 훔쳤단 말이야.
(a)상관없어. (사이) 그 금붙이 어딨어?
(b)여기.
(a)나랑 도망가지 않을래.
(b)어디로?
(a)어디든!
두 인형 병풍 위에서 이리저리 헤매고 다닌다.
실젠지 환청인지 광대패들의 신명나는 장단 들려온다.
공길(off-sound)
(b)광대다!
(a)가보자!
두 인형, 병풍 위에서 덩실덩실 춤을 춘다.
춤을 추다 병풍 모서리에서 공길 인형이 외줄을 탄다.
공길(off-sound)
(a)아래를 보지 마.
(b)무서워.
(a)줄 위라고 생각하면 안돼.
줄 위는 반 허공이야.
땅도 아니고 하늘도 아닌 반 허공.
두 인형, 외줄을 타듯 병풍 모서리를 겅중겅중 걷는다.
갑자기 멈춘다.
두 인형 병풍 아래로 사라진다.
인형이 다시 올라온다.
장생 인형의 눈이 칼로 찢겨져 있다.
공길(off-sound)
(a)내 평생 맹인 연기를 하고 살았는데,
막상 진짜 맹인이 되서는 맹인 연기 한번 못해보고
죽는 게 정말 한이네.
진짜 제대로 한번 놀 수 있는데 말이요. 허허허.
장생 인형, 병풍 아래로 풀썩 내려간다.
연산, 의아해 쳐다본다.
병풍 밑에서 피가 배어 나온다.
연산 놀라 달려들어 병풍을 거칠게 제친다.
쓰러져 있는 공길의 손목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다.
(jump)
의관들 일어나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간다.
공길, 손목에 붕대를 동여 메고 누워있다.
연산, 공길을 한동안 내려다본다.
연산 일어나 공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며 공길로부터 멀어진다.
창호 문에 턱 막힌다.
손을 뒤로 돌려 문을 연다.
문을 빠져나가 휘청거리며 긴 복도를 따라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