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전립(白戰笠)과 홍철릭[紅天翼]의 경우 전자는 우리들이 생각하는 흰색이 아닌 물들이지 않은 그대로의 누런 흰색이다. 후자의 홍철릭의 홍색은 실제로 보면 거의 금적(金赤)에 가까운 색이다. 또 벽색이라고 할 때 막연히 하늘색과 비슷한 색으로 상상할 뿐 청색과 어느 정도 구별되는 푸른색인지 그 정도를 정확히 알기 힘들다. 같은 홍색이라도 홍상(紅裳)의 홍색과 홍천익의 홍색은 실제는 서로 다른 홍색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한국 문화 속에 나타난 빛깔은 다양하고 특이한 배색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그 색채의 사용이 직접적인 감각 체험에 바탕을 둔 시각적 효과에 따른 특성을 강조하기보다는 관념화된 의미, 상징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예를 들면 사계의 변화를 청춘(靑春)·주하(朱夏)·백추(白秋)·현동(玄冬)으로 관념화한 것도 오행에 바탕을 두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한국 문화 속의 색채는 시각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관념적이고 상징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