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건축과 빛깔
한국의 건축물에 반영된 색채 역시 왕궁이나 사찰과 같은 건물은 유채색이 주조를 이루고 있는 반면에 일반 서민의 주택은 있는 그대로의 색, 즉 무채색이 주조를 이룬다. 이 경우의 빛깔은 자연 그대로의 색이어서 채색한다는 능동적 행위 개념보다는 건축 재료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자연 그대로의 빛깔이라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벽이나 창은 창호지·닥지·회벽 등의 회백색조(灰白色調)이며, 벽에 걸린 옷도 흰색·회색·검정에 이르는 회색조로서, 심지어 문인화(文人畫)까지도 색채가 없다. 실내에 있는 백자, 부엌살림, 누런 회황색(灰黃色)의 장판, 흑갈색(黑褐色)의 문갑·장롱 등 또한 무채색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옥외 풍경이나 건물 그 자체도 회색 돌담, 회청색 기와, 누런색 토담 등으로 강한 유채색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렇게 하여 회색조의 빛깔은 자연의 사계 변화에 따른 풍경의 색채와 문자 그대로 잘 어울리는 취락 풍경을 이루는 건축물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한국의 건축물의 특징이 되어 자연의 색과 대비될 때에 강하게 튀어나오지 않는 동색 조화(同色調和)를 이루었다. 그래서 바라다볼 때에는 평온한 마음을 유발시키며 나아가 ‘모나지 않는’ 조화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것 또한 음양오행적 사상의 무색 중화(無色中和)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한편, 궁궐이나 사찰 등과 같은 건축물의 색채는 있는 그대로의 빛깔이 아닌, 적극적으로 채색(彩色), 장식(裝飾)하였다. 일반 서민들이 일상생활에서 화려한 진채(眞彩)와 화식(華飾)을 사용할 수 없는 것처럼 건축물에도 상층 계급에서만 진채·화식을 사용하였다. 특히 신라시대에는 진골(眞骨)의 사가(私家) 이상의 건물에는 오채(五彩)를 베풀었다. 이러한 결과로 한국 건축의 특이한 성격을 나타내는 단청(丹靑)이 창조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한국의 건축에 나타난 가장 대표적인 색채 문화라고 평가해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