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근 세
조선왕조는 고려시대와 달리 유학의 가르침을 국가와 사회 발전의 근본으로 삼게 되었다. 따라서 많은 유교 경전을 통하여 지식을 쌓아야 하며, 또 중국의 시문을 암기함으로써 교양을 구비해야 했다.
이러한 여건 아래에서 많은 유교 경전과 역사 서적, 여러 전문 분야의 학문 서적 및 문집 등을 인쇄하게 되어, 목판인쇄로는 감당할 수 없었으므로 고려 때의 활자인쇄술이 계승되었다.
조선 제3대 태종은 1403년 계미년에 주자소를 설치하여 청동활자 약 10만 자를 주조하게 하였다. 이것이 계미자(癸未字)이다. 태종은 활자 주조의 이유를 “우리 나라가 중국의 바깥쪽에 있어 중국의 책이 드물게 이르는데, 목판에 새겨 만든 책은 획이 잘 이지러지고, 또 경비와 공정관계로 천하의 책을 찍어낼 수가 없다. 이제 내가 구리쇠로 본떠서 글자를 만들어 책을 얻을 때마다 이것을 찍어 내어 널리 퍼뜨리게 하겠다[權近, 鑄字跋].”고 하였다.
이 글에서 출판물을 통한 외국 문물의 수용과 이용이라는 국제 출판정책을 엿볼 수 있고, 유학에 의한 정치 이념의 구현으로 유학의 학술적 진흥과 교육을 지향하고 그를 실현하기 위해 인쇄기술 개발정책을 실시했으며, 이것이 총체적으로 정부에 의한 국가적인 출판진흥정책으로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