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일본의 지배하에 들어간 이 후 우리 나라의 출판은 1909년 2월에 법률 제6호로 공포된 ‘출판법’의 제재를 받게 되었다. 정치사상에 관한 도서 출판이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출판계에서는 검열 통과가 용이한 문학도서 출판이 성행하게 되었다.
당시 민간출판사로는 신문관·회동서관(匯東書館)·광학서포(廣學書鋪)·박문서관(博文書館)·한남서림(翰南書林)·광문회(光文會)·영창서관(永昌書館) 등이 있었다. 회동서관은 ≪추월색≫(최찬식), ≪자전석요 字典釋要≫(지석영) 등 100여 종을, 신문관은 ≪말의 소리≫(주시경), ≪조선말본≫(김두봉), ≪조선불교통사≫(이능화) 등을 출판하였다.
이러한 출판사들은 우리 문화의 보존자·전파자로, 우리 민족의 대변자로서의 계몽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1919년 3·1운동으로 출판의 양상이 달라졌다. 조선총독은 1920년 9월 이른바 문화정치를 표방하여, 이러한 문화정책상의 전환으로 ≪동아일보≫·≪조선일보≫ 등의 신문이 발간되고, 출판계도 무단 총독정치 때보다는 다소 활발해졌다.
개화기부터 활동한 박문서관은 ≪현대장편소설전집≫, ≪조선어사전≫(문세영), ≪춘원시가집 春園詩歌集≫(이광수), ≪조선고가연구≫(양주동), ≪소파전집 小波全集≫(방정환) 등을 출판하여 많은 업적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