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서양화가 소개된 것은 1899년경 네덜란드계 미국인인 휴버트 보스가 중국을 거쳐 입경하여, 고종과 세자의 어진을 그린 것부터이다. 일제강점기 동안 근대화가들은 주로 일본에서 서구적 기법을 배우고 돌아와 작업을 했기 때문에 모방적 한계를 뛰어넘을 수가 없었다.
1908년 고희동(高羲東)이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도쿄[東京]미술학교를 입학한 것을 비롯하여, 김관호(金觀鎬) ·김찬영(金瓚永) ·나혜석(羅蕙錫) 등 역시 일본에 유학하였으며, 이종우(李鍾禹)는 도쿄미술학교를 거쳐 프랑스에서, 임용련(任用璉)과 장발(張勃)은 미국에서 현대미술과 접촉하였다.
한편 1911년 3월 조석진과 안중식을 교수로 한국 최초의 근대 미술기관인 경성서화미술원이 설립되어 오일영(吳一英)과 이용우(李用雨)를 첫 입학생으로 받았으며, 이듬해 김은호(金殷鎬)가 2기생으로 입학하였다. 서화미술원은 계속하여 이상범(李象範), 노수현(盧壽鉉) ·최우석(崔禹錫) 등을 배출하였으나, 19년에 문을 닫았다.
1916년에는 김관호가 동경미술학교 서양화과를 수석으로 졸업하였고, 그해 10월 《해질녘》으로 일본 문전(文展:文部省展覽會)에서 특선으로 입상하였으며, 12월에는 고향인 평양에서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18년 6월 안중식을 회장으로 서화협회가 발족하였으며, 21년 이후 이 단체가 개최하는 ‘협전’이 36년까지 개최되었다. 민전인 협전에 비해 총독부가 문화정치의 일환으로 1922년부터 실시한 선전(鮮展:朝鮮美術展覽會)은 관전으로 44년까지 열렸다.
1930년대에는 김환기(金煥基) ·유영국(劉永國) 등에 의해 추상회화가 그려지기도 하였으나, 40년대 일제의 전시체제 돌입에 따라 많은 미술가들이 친일세력으로 변절하거나 절필하였다.
[출처] 근대의 한국회화 | 두산백과